겨울 방학 내내 한창 혈기 왕성한 세 놈을 집안에만 가둬두니
방학 끝날때 쯤 내가 더 견디기 힘들만큼 괴로웠다.
1+1+1=3은 수학 공식일뿐...인간 셋이 모이면...
더구나 여자 셋이 모이면 쪽박이 깨진다는 옛말도 있듯이
심심한 이 놈들이 입이 가만히 있지 않으면 집안에서
육박전이라도 해대니...이 어미가 어찌 온전한 정신이리요.
두 놈이면 지들끼리 싸움이라도 한 직후이면 잠시라도
정적이 흐르건만 세 놈이니 항상 지지배배...와글와글...
그래서 내 사는 것이 아수라장이라 늘 말한다.
아들 하나 달랑 키운 나의 큰 언니는 원래도 정적인데
아들이 다 커서 어쩌다가 얼굴 한번 마주칠 정도이니
그야말로 적막강산으로 살다가 우리 집에 왔다가면
삼일은 귀가 멍멍 하단다.그렇다고 우리 집 아이들이
유난히 부산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여자 아이들이라 그런지
하루 종일 이놈 아니면, 저놈이 재재 거리니....
이 엄마는 얼이 반쯤 빠지고 넋이 나가 멍할 때가 많다.
이런 세월이 십년을 넘겼으니...
내가 어찌 온전한 형체를 보존하고 있으리요.
예전의 나는 찾아 볼수도 없고...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던 나인데
이제는 음악인지 아이들 소리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흐느적 거리게 되었다.
경주행을 결정하자 일주일 전서부터 아이들은 부풀어 올라서
야단법석이다.
해마다 친정 엄마가 홀로 계시는게 안타까와 모처럼 가는 휴가를
엄마네 집으로 가야만 했어서 아이들이 여행다운 여행을 한지가
몇년째 접어드니 아이들과 남편에게 미안하여,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한번쯤 일상에의 탈출을 시도하여 환기가 필요 하여서였다.
오고 가는 기차 안에서 아이들은 잠시도 입을 다물고 있지 않고
여행 기분에 들떠서 계속 "조용히~"를 연발 해야만 했다.
"제발 입 좀 다물어라~ 입도 안 아프니?"
엄마가 정신이 휘황하여 가끔 이렇게 말하지만
하기야 아이들이 조용할 때는 거의가 안 좋을 때이니
그마저도 그리워하고 권장 할 일도 아니다.
아이가 심하게 아프거나 어디 탈이나면 아이들이 조용해지니 말이다.
내려가는 기차에서는 준비해간 넉넉한 먹거리로 아이들은
그야말로 띵호아~다.아마도 옆 자리에서 보신 분들은
세 자매들이 잠시도 쉬지않고 지지배배 거리는 것에
아연 실색하셨을지도 모른다.막내는 너무 좋아서
유치원에서 배운 무용으로 라이브 쇼까지 하고 난리 부르스다.
경주에 도착하여 콘도에 여장을 푸니
아이들은 이 방 저 방 뛰어 다니면서
너무 좋다고...이사 오자고 난리다.창문밖 풍경까지 환상적인데다가
가구없는 32평형 콘도가 그리 넓고 쾌적해 보일 수가 없었다.
창고 수준에 가까운 우리 집과 비교하니...아방궁처럼 보일테지.ㅎㅎ...
시간을 아끼기 위해 여장을 풀고...
가장 멀리있는 문무 대왕릉을 가보기로 했다.
택시 대절하니 8만원이나...길 바닥에 돈을 쏟아 붓는다 싶지만
온 길에 다 보고가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감행했다.
거금을 들여 달려간 문무 대왕 해저 왕릉은 기대치에 못 미쳐
잠깐 후회할뻔도 하였으나...아이들에게 잠시라도 바닷 바람 쐬어주고
그리고 의미있는 왕릉을 직접 본것만으로도 스스로 만족하자 위안했다.
아이들은 밀려오는 파도따라 뛰어 다니는게 역시나 아이들이다.
저 왕성한 활동 에너지를 집안에만 묶어 두었으니
오즉 몸이 근질거렸으랴~
왕릉을 좀더 가까이 보라고 설치해 놓은 망원경도 다 고장나고
주변도 거의 정비되지 않아서 경주 시내에만 공을 들인 것 같아서
유감이었다.
예인이가 다리 아프다고 자꾸 업어달라하자 아빠가 말 흉내를 내고 있다.
마지막 날은 콘도에서 짐을 챙겨나와서 박물관과 그 일대를
돌기로 하였는데 그날은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예인이는 마침 준비해간 스키복에 내 스카프까지 머리에 쓰고
그야말로...피난민 이사가듯이...경주의 바람을 가르며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강행군을 했다.이 극성 엄마는 아이들이
힘들다하면, 바람잡이 역활에다가 가이드까지 하느라 있는 힘을 다내어
투자의 극대화를 꾀하느라 진을 빼고나니 집에 온 이틀후인 지금에도
긴장이 풀리니 온 몸이 나른하고 늘어지려 한다.
아이들에게 머릿속에 담아라~, 느껴라,글로 표현해 보라~
아이들이 무엇을 얼마나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엄마 마음은 하나라도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설명해 대었다.
석빙고 앞 너른 초원에는 궁터와 말타기등도 있고
말이 모는 마차도 있어서 옛 정취를 재현하고 있었다.
나의 세 딸들도...잠시 애마 부인1,2,3...ㅎㅎㅎ..
예인이는 무서워하여 장난감 말에 타고 있다.
나는 그 사이 벌써 뾰롯이 파릇하게 돋아나는 쑥과 냉이에
정신이 팔려 주변에 참 냉이를 아이들에게 가르켜주고
냉이를 캐와서, 저녁에 자연산 냉이로 된장국을 끓여 먹으니
아~~~~~~~내가 이리 호사해도 되는가?하고 다리를 꼬집어 보았다.
여유만 있다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인 것 같다.
가끔씩 부족함에 아쉬워 더 큰 꿈을 꾸다가 나를 부대끼게 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가족 건강하고 일년에 한 두번이라도 여행을 떠날수 있는
이 정도의 삶만이래도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생각 되었다.
남도쪽으로 여행하면 감칠맛 나는 음식들로 먹는 즐거움이 극대화되지만
유감스럽게도 경상도 쪽은 음식에 관한한
크게 기대할 수준이 못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한다하여 모든 음식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음식 감각은 남도 요리가 으뜸인 것 같다.
좀 알아준다는 쌈밥집에 들렸는데...내 혀가 너무...뛰어난가?...
한쪽에서는 어느 방송국인지 와서 취재를 하고 있건만...
내 입에는 실망...그 자체였다.토속적이어야 할 된장 찌게도
산 된장으로 끓여서 깊은 맛이 없고, 반찬은 가짓수만 많지
입에 착 붙는 맛이 없어서...아쉬움이 많았다.
관광지라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지만 음식 하나도
훌륭한 관광 상품이기에 흉내만 낸 음식 말고
진정으로 깊은 맛을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하였다.
경주에 유명하다는 황남빵...
속이 거의 팥으로 되었는데 작은 빵 20개가 만원이니
결코 싼 것은 아니지만 황남빵으로 유명해졌다는 원조집에 가보니
수십명의 직원이 쉴새없이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마다 황남빵을 사 먹어서 황남빵집 매출에 기여를 했다.
사먹는 음식이 거의 실망스러워 역시 엄마표 음식이 최고라는
찬사를 받으며 "느그들, 엄마 잘 만난줄 알라우~" 한껏 생색을 내었다.^^
(아직도 이렇게 지병이 도져요.)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맛난 것 먹을때의 행복이야 변하겠는가?
경주의 산새를 둘러보니 거의 대부분의 산이 둥그스름하게
능선을 그리고 있었다.뽀족한 능선이라곤 거의 없는 것을 보고
이곳이 풍수 지리학적으로 참으로 온유한 곳이란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지세가 사람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는데 확실히 많이 반영 되는 것 같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낳게해준 모태인 경주...살고 싶은 도시였다.
아이들과 나에게...오랫만의 화려한 외출이었던
이번 여행은 참으로 행복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