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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산타가 되다.

by 농부김영란 2004. 1. 17.


    12월 초부터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엄마는 산타에게 무엇을 받고 싶어요?" 묻고 또 물었다.
    이제는 산타가 엄마 아빠가 가장한 연극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이런 행사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다.
    특히나 매사에 넘치는 호기심으로 폭탄일지라 하더라도
    접근해서 만져보고 확인해보아야 직성이 풀릴것 같은 예지는
    뒤 마려운 강아지마냥 들락 날락거리며 뭔가를 도모하는 모양이다.
    넘치는 식욕으로 몽실 포동통한데다가 가슴을 내밀며 걷는 팔자 걸음때문에
    멀리서 걸어오는 둘째를 보노라면 엄마인 나도 웃음이 나올지경이다.
    위풍당당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옆에 호위병처럼(?) 거느리고 오는
    둘째 덩치의 반 정도밖에 안되는 체구의 친구들이
    알고보면 둘째의 호위를 받으며 오는 것이고
    하교 중간에 연락없이 사라져서 찾아보면
    운동장이 넘치게 내달리고뛰고 노는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이다.
    덩치로치면 반에서 제일로 큰 아이가 걸핏하면 눈물을 글썽거려서
    너무나 의외스럽게 느껴지는 아이라
    예지 담임 선생님이 오랫동안 잊지못할 인물에 뽑혔단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징징대며 울기도 잘 하지만
    음악을 듣다가도 눈물을 흘리는 감성적인 아이이기도 하고
    선생님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 줄때도 그 덩치에 눈물을 줄줄 흘린다니...
    자랑스런(?) 눈물의 여왕에 등극한 인물이기도 하다.
    예지는 즉흥적이고,단순하고,놀기 좋아하고, 이 세상 근심 걱정을 왜 하냐는 듯 잘 먹고 잘 자는 아이이다.
    한동안 엄마인 나에게 잘도 대적해서 이성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하는
    반골 기질도 다분하고,자기가 하고 싶으면 엄마의 그 어떤 말도 다 잊고
    그 순간의 기분에 따라 행하기때문에 예지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많았다.
    자기 주장이 강하기때문에 내 방식에 맞추려는 엄마의 교육 방침을 질타라도 하듯
    제 맘대로 자주해서 아이 키우기 수월치 않다고 내가 늘상 툴툴대던 아이이다.
    가장 자유를 많이 누리고 현재도 스스로 자유를 확보하며 사는 둘째는
    올해 담임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고 따라서 선생님이
    "음악을 즐기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좋다"라고 말한 것에 자극받아
    선생님이 배우신다는 단소를 매일 집에 와서 연습하더니
    기어이 반에서 자기가 젤루 잘 불게되어 칭찬받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언젠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그렇게 몰두하지 않을까하고 작은 싹을 보여 주기도 하는 아이.
    첫째와는 아주 다른 아이이다.
    그런 둘째가... 성탄 전야에 산타가 되어 우리를 감동 시켰다.
    산타가 반드시 올것이라며 종이 가방을 가족들 모두의 것을 준비하여 머리맡에 두고서는
    자꾸만 일찍들 자라고 성화이다. 보통은 잠 많은 둘째가 제일 일찍 자는지라
    가족들 모두 잘때 산타를 할 예정인데 모두 눈들이 초롱 초롱 잘 생각이 없으니
    짜증을 내며 기다리다 어느새 쿨쿨 자는듯 했다.
    아이들 아빠와 나는 예지의 속셈을 다 눈치채고 있기에
    큭큭거리며 예지가 어떻게 아침에 선물을 가방속에다 넣을까하고 궁금해하며
    우리는 거의 12시가 다 되어 잠이 들었고 내가 새벽 4시 30분경에 눈을 떴기에
    예지가 선물을 발각(?)되지 않고 갖다놓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7시 넘어서 일어난 예지,
    동생에게 산타가 왔는지 가방을 열어 보자며 준비했던 종이 가방을 열어 보더니 막내가 환성을 지른다,
    "와! 산타 할아버지가 오셨다~"며.
    언니 선물(문구류),엄마 선물(풍경이라는 책),아빠 선물(양말), 동생 선물(문구세트)
    모두 포장지에 잘 포장되어 있었다.
    난 예지가 언제 선물을 넣었는지, 선물 살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도대체 궁금했다.
    엄마가 그다지 용돈을 풍족하게 준 기억이 별로 없는데
    심부름하면 100원정도 주고 토요일이면 간식을 산다고 500원씩 준것을 모았다한다.
    주머니에 돈 있기가 무섭게 달려가 소비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던 둘째여서
    "너, 그렇게 돈을 다 써버리는 습관이 붙으면 나중에 거지되기 십상"이라며 늘상 잔소리를 했었는데
    이 어인 가상한 일이란 말인고! 그리고 3시에 일어나서 선물을 가방에 넣었다 한다.
    한번 자면 도둑이 업어가도 모를 위인인데 어찌 세시에 다 일어 났을꼬?
    예지 말로는 안자고 기다렸다니 놀라고 놀랄 일이다.
    예지가 기특하여 마구 뽀뽀를 해 주었다.
    이런 깜짝 쇼를 해서 가족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몇날을 궁리하고
    그 돈을 모으느라 친구들이 간식으로 과자 사 먹을때 몇달을 모았다니
    그간의 둘째놈에게 가슴 쓰리던(몇번 있었지) 기억이 한순간에 다 사라지고...뿌듯~
    아마도 내년에는 이런 둘째에게 질세라 첫째, 셋째도 나름대로 산타쇼를 한다고 분주해 지겠지.
    언제까지나 계속될지 모르는 이런 쇼(?)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돌아보면 그립고도 그리운 추억이 되겠지.
    내 어린 날의 추억이 어른이 된 지금 날 행복하게 해 주듯이 말이다.
    학용품이 귀하여 몽당 연필을 쓰고 연습장 한장이라도 깨알처럼 글씨를 써서 아끼던
    세대를 살아 온 엄마인지라 나는 돈을 아끼라는 의미에서 좀체 유행하는 학용품을 잘 안 사준다.
    옆 친구들이 쓰는 별로 실용적이진 못하지만 유행을 타는 물건들을 갖고 싶다고 노래해도
    뜸을 들이고 들여서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한번 사주곤 한다.
    1000원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고 괜시리 학용품 사줄때마다 일부러 뜸을 들이는 엄마인데
    그렇게 근검 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배이라고 전근대적인 경제 교육을 시키는 엄마라
    우리집 아이들은 비교적 요즘 아이들에 비해 순수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큰 아이 3학년때 헝겊 필통을 가지고 다녔는데 실밥이 뜯어진 것을
    아이가 스스로 꿰메어서 가지고 다녔나분데 그것을 담임 선생님이 보시고 놀라셨다 한다.
    요즘 보기드문 풍경이라나.^^ 사실 나도 모르던 일이라 선생님이 말하실 때 놀랬다.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닌데....지독한 엄마를 만났나부다 했을지도 모를터...
    하지만 난 그 정도는 아닌데...엄말 부끄럽게 하는구먼! 2000원이면 사는 필통을 가지고...
    아이가 한편 기특하고 한편 쑥쓰럽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둘째 예지는 돈이 생기면 사고 싶은 물건이 너무 많아서 돈이 남아 날때가 없었다.
    아직도 큰 아이에 비해서는 어림없지만
    그래도 이번에 용돈을 모아서 가족을 위해 쓸 궁리를 한것만도 많이 인내 한것이다.
    막내는 뽀뽀 열번으로 선물을 대신하고, 큰 아이는 다독상으로 받은 도서 상품권을 엄마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럼...이 엄마는 무슨 선물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을까요?^^
    막내는 보드 필통이 갖고 싶다고 노래해서 유치원 산타 잔치때 보내서 사 주었고(4000원),
    예지는 귀여운 필통(4000원), 큰 아이도 필통(3000원),
    도매상에서 샀으면 만원도 안들었을 선물인데 아이들은 너무나 감탄하고 좋아한다.^^
    오늘 무지 수지맞은 기분이 드는데...나 분명 행복한 엄마 맞지요?히히히...
          2003.12.25 세자매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