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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밭

귤의 눈물

by 농부김영란 2022. 11. 23.

 

* 귤의 눈물

 

농부가 되고나서 어느 한 해 흡족하게 마음 편한 해가 없었다.

 

음식을 요리한다면 적당하게 좋은 재료를 사다가, 양념 배합 잘하여,

간을 잘 맞추면 얼추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다.

물론 요리의 기본을 잘 알고 심혈을 기울일수록, 예술요리가 탄생한다.

그런데 농사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날씨가 절대적으로 좌우하여,

날씨 따라 농심이 출렁인다.

내 마음에 흡족하다고 여긴 해는 5년에 한번 있을까말까 하였다.

이러니, 농부로 살다가 애간장 녹아서 내 명에 못 살겠다고 푸념이 절로 나온다.

 

2022년 비교적 큰 타격 없이 농사가 되는 줄 알았다.

가을 햇볕이 좋아서 귤이 맛있게 익는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비가 안와도 너무 안와서, 나중에는 귤나무 잎이 타들어 가고,

귤들이 시들시들해 보이는 게 탈수현상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10월 중순 이후는 매일 스프링쿨러도 틀고 호수로 물을 주었지만,

코끼리에게 비스켓 한조각 주듯 부족한 물이었다.

흙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대기가 물을 만나니 바로 흡수해서,

귤나무에게로 가는 물은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귤나무에 호수를 박고 한참이나 물을 주니 시들던 아이들이 기력을 차렸다.

그럼에도 귤나무는 충분히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여

수확하려고 보니 귤이 돌덩이처럼 단단한 것들이 있었다.

 

귤맛을 좌우하는 데는 당도와 산도 그 외 미량의 감칠맛이 잘 배합되어야 하는데,

친환경 귤맛은 감칠맛이 강한 편이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새콤하고, 적당히 감칠맛이 어우러져야

입에서 맛있다고 자꾸 불러들인다.

그런데 그 배합을 농부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애를 끓인다.

 

가을볕이 좋아서 당도가 잘 올라가서 역대 급으로 맛있는 귤이

될 수도 있겠다고 좋아했다가 비가 너무 안 오니,

당도는 높은데 산도가 빠지지 않아서 비율이 맞지 않았다.

비가 적당히 와주어서 산도 빠지고, 햇살이 적당히 뿌려주어서,

당도도 좋으면 농부는 안심 하는데, 올해는 가을비가 너무 안와서

당도는 좋은데 산이 너무 높았다. 그리고 가을 내내 비가 안 오니

귤이 크지를 않아서 소과비율이 너무 많다.

막상 수확을 하려고 보니 심하게 못난 귤들과 아주 작은 귤들이 많아서

회원님께 드릴 귤이 부족할지 몰라서, 수확하기도 전에 판매종료를 선언했다.

 

위기를 만나면, 나는 쓰나미에 집도 사람도 다 휩쓸려 가던 재해 상황을 떠올린다.

그래도 절반은 건질 수가 있으니 다행이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은 익숙한 습관이라서, 사막의 선인장처럼 견뎌낼 것이다.

농부로 살아낸 것은 내핍의 힘이었다.

 

첫 수확을 미룰 수가 없어서 수확을 시작하니

다음날부터 기상예보에 없던 비구름이 몰려와서 내리 3일을 비가 왔다.

비를 기다린 귤나무가 퉁퉁 부을 정도로 물을 들이켰다.

다 된 밥에 물 말아놓은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비가 오긴 해야 하는데, 또 타이밍이 적절치 않았다.

날씨가 휘저은 것이다.

 

빗방울 달린 귤들이 눈물이 맺힌 듯, 농심도 뻐근하다.

그 어려움 다 이겨낸 귤, 장하다고 쓰다듬어 주어야지!

화학 농약, 화학 비료 주지 않고, 하우스도 치지 않고, 타이백도 하지 않고,

오직 자연의 힘으로 결실한 장한 귤인데

귤에게 경의를 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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