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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전지적 관점

by 농부김영란 2022. 4. 26.

 


"온갖 하소연을 들어주고 
상대를 함께 욕해주고
나를 다독여주는 것인데
역시 ‘겸손은 힘들어’팀 답게 충고를..."




손가락 크기의 작은 줄기를 삽목해서 애지중지 5년 동안 키운 삼지닥나무를
누군가가 담을 넘어와서 캐 가버렸다.
이제 수형도 잡히고 꽃도 제법 많이 피어서
이웃들에게 장하게 자란 모습을 자랑하고 난 직후에 없어져서 황당하고 불쾌했다.

길가의 농장이라서 사람들이 오며가며 내가 가꾼 꽃밭을 살피기는 하나,
담까지 무너뜨리고 캐 간 행동에 마음이 많이 상했다.
잃어버린 사람이 잘못이라는 말도 있는 것은, 누군가를 의심하는 마음까지 들기 때문이다.
기분이 땅에 뚝 떨어지자 좀체 돌아오지가 않았다.

손버릇이 나쁜 사람은 좋은 것을 보면 본능적으로 슬쩍 해 가는데,
이런 작은 도둑에서부터 나라곳간을 훔치는 큰 도둑까지 온통 양심이 부재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꽃을 훔쳐 가는 것은 큰 도둑이 아닌 것 같지만 남이 애지중지 하는 것은 돈 이상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남의 꽃이 예뻐서 뿌리째 뽑아가는 사람이 제대로 꽃을 키우고 즐기기나 할까 싶다. 

나도 지나다니다가 예쁜 꽃이 있으면 저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데 흔하지 않은 꽃은 사기도 쉽지 않아서, 나는 주로 삽목을 해서 키운다.
손가락만한 가지를 얻어 와서 뿌리를 내리고 키우려면 몇 년이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더욱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공 들인 물건에 애착이 더 가서 나는 꽃 사랑이 점점 더 커진 것 같다.

한 번에 공짜로 얻는 쉬운 방법이 도둑질인데 꽃도둑의 죄질은 얼마일까?(꽃으로 마구 때려주고 싶다^^)
꽃을 잃어 버려 기분이 안 좋은데다가 함께 도모하는 일에도 갈등이 생겼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일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파열음이 나고,
결속이 안 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요즘 몇 가지 고민에 내 감정이 실려서 평정을 잃고 있었다.

겸손은 힘들어 팀의 유리공주에게 지혜를 알려달라고 청했다.
내 문제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이 실려서 지혜로운 판단을 하기 어렵다.
남의 일은 객관적으로 보여서 냉정하게 평하기가 쉬워 나의 심리적인 상태를 조절하려고
“지혜를 구합니다~” 했더니 한참을 생각하던 유리공주 왈, 하나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단다.
전지전능하신 신의 관점에서 보면 기승전결이 다 보이고,
그 모든 일이 가벼운 일이라면서 전지적 관점에서 보라고 한다.

전.지.적.관.점...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위로가 안 되는 말이다.
사람이 어찌 신처럼 사물을 바라보란 말인가?
나의 속물적 근성은 나의 온갖 하소연을 들어주고,
내편이 돼 상대를 함께 욕해주고, 나를 다독여주는 것인데,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기분이 풀릴 텐데, 역시 ‘겸손은 힘들어’ 팀이다.

형이상학적인 말로 나를 가르치니 통감자를 꿀꺽 삼킨 것 같았으나 곰곰이 생각하니 지혜로운 말인 것 같다.
역시 유리공주다운 조언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세상사를 가볍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동네사람들에게 마을청소를 하자고 했다.
아름다운 고호마을을 만들기 위해 꽃씨를 뿌리자고.
함께 노동하니 절로 결속이 됐다.
남남이 만나서 하나처럼 되려면 세월의 풍화작용이 깃들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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