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또 일을 벌였다.
혼자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대형사고를 쳤다..."
치기(稚氣) 많은 내가 또 일을 벌였다.
혼자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대형사고를 쳤다.
프리마켓 셀러 한 번 안 해본 사람들과 프리마켓을 만들어 버렸다.
우리가 속한 마을 이름이 호근동인데, 윗동네는 이제 부락이 막 형성 중인 신생 동네라서
우리끼리 마을 이름도 지어버렸다. 고상한, 고급진, 높을고를 써서 高호근동을 줄여 <고호마을>로 지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연상하게 하기도 해서 우리끼리(몇 명이서) 만장일치로 지었다.
우리는 고호마을의 시조(始祖)가 된 셈이다.
그리고 지난주 토요일에 첫 마켓(노점)을 열었다.
속전속결 일주일 만에 도모하고 장을 펼쳤다.
여느 프리마켓과는 조금 다른, 물건을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끼리 우애를 도모하고,
우리 마을을 알리기 위해서 일종의 축제처럼 프리마켓 해보자고 제안했었다.
뽕삼이(개이름) 엄마는 집에서 키운 채소도 한소쿠리 가져오고,
쑥도 뜯어서 쑥개떡도 만들어 오라고 부추겼다.
당근 케이크에 자신 있는 조관순(유관순 동생) 씨는 당근케이크와 물김치를 만들어 나왔다.
모든 축제는 먹을 것이 있어야 즐거우니 혜진 씨에게는 김밥을 떠안겼다.
명색이 전직요리사인 나는 입으로만 하고 남이 해준 음식으로 즐거울 심산이었다.
대신에 나는 축제 전반의 일을 도맡아서 하고, 축제의 격을 높여줄 셀러 선생님들을 모셔왔다.
허접한 동네프리마켓에 함부로 가실 리 없는 도자기 작가님을 모셨고,
꽃차 선생님도 자리를 빛나게 모셨다.
공예대전에 입선한 조각보 장인도 동네에 살고 있으니 그것만 해도 볼거리가 됐다.
그리고 2년 전부터 함께 그림 수업한 우리들은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자고 꼬드겼다.
“뽕삼 어무이요, 그대가 쑥개떡만 팔면 쑥개떡 파는 시골아줌마지만,
그림을 전시해 놓고 그 옆에서 쑥개떡을 팔면 화가가 파는 쑥개떡이 된다오~” 하니
뽕삼 엄마는 얼결에 그동안 그린 그림 모두 내놓고 전시회를 했다.
나도 그동안 습작한 어설픈 그림들을 나무에도 걸고,
상자 위에도 놓고, 즐비하게 늘어놓았다.
전문가가 보면 코웃음을 칠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림은 엉성했을지라도 분위기는 한결 풍성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함께 그림 그리는 고호마을,
드디어, 우리 동네는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예술인 마을이 돼가고 있다.
“작가는 전시회를 못해도, 아마추어는 한다”며 무식해서 용감한 면모를 우리는 유감없이 발휘했다.
누가 흉보면 어쩌냐고 부끄럽다고 전시 안 하겠다는 것을 프리마켓 덕분에 졸지에 야외전시회까지 겸했다.
2년 전부터 하자는 말은 있었지만 의견이 분분해서 진척이 없었는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며 확 밀어붙인 조관순 씨 덕분에 프리마켓에 야외전시회까지 하게 됐다.
심지어 우리들은 그림 판매 문의까지 받고 고무됐다.
‘시작이 반’이라고... 새 지평을 연 것 같다.
함께 축제를 만들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독창적이고, 따뜻한 프리마켓이 되기를 노력해 봐야지.
드디어! 꿈이 멀리서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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