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 2022.01.07 09: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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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첨단기계문명시대에 살아도
사람이 만든 도구에 휘둘리지 말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성찰을 했으면...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됐지만, 나의 새해는 대개 음력설이 돼서다.
그 즈음에서야 11월부터 시작된 귤 수확과 배송이 얼추 끝나기 때문에,
나는 긴 여정의 노고를 풀어내며 후줄근해진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고단한 몸을 추스르고 새해설계를 한다.
1월말이면 이미 봄이 가까이 와서 매화가 벙글고, 바로 봄농사에 돌입해야 하기에,
연중 내내 농한기가 없는 긴 겨울을 보내는 우리 시스템이 너무 힘들어
대변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회원제를 구축해 안정적인 판로와 수입구조를 갖추게 됐지만
전 과정을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영세하고 열악한 시스템인지라,
해마다 노화돼 가는 우리 부부는 규모를 줄이고 기계화를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다.
뒤를 돌아보면,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싶다.
큰아이가 중 2때 명퇴해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다시 재취업을 1년간 했지만,
대기업보다 열악한 근무조건이 힘들다며 그만 둔 남편을 전업농으로 인도해
지금까지 농사를 지어서 세 아이들을 대학 졸업까지 뒷바라지했다.
회사를 그만두고서야 매월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며,
내가 움직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수입이 무일푼이 되는 자영업자들의 고충과 비애를 몸으로 실감하게 됐다.
뼈 빠지게 고생한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겪고 나니
돈을 왜 마디게 써야 하는지를 아이들에게 시시때때 일깨우는 꼰대엄마가 됐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으니 일부러라도 고생을 시켜야 한다’는 식의 고리타분한 훈육이 내 안에 잠재하고 있다.
내가 부모나이만큼 살고 나니,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삶의 근본지향은 결국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늘 성찰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다.
겨울 수확기의 반환점을 돌 때 즈음에 우리 부부는 방전되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SOS를 쳤다.
며칠이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돕기를 바라서, 힘든 남편이 아이들이 언제 오냐고 자꾸 물었다.
내가 직접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라고 하니,
영혼이 집나간 모습의 아빠를 본 아이들이 하던 일을 제치고 일단 막내가 달려왔다.
아이들은 반디농장 시작 때부터 함께 해서 숙련된 일꾼이라
투입되자마자 아빠의 노고가 절반으로 줄어 남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막내가 있는 동안 남편은 조금 피로회복을 했고,
일주일간의 극기훈련을 하고 돌아간 막내 다음에 바통터치 해 첫째가 왔다.
나는 딸들이지만 일부러 아빠 몫의 일을 시킨다.
20㎏ 박스를 들고 내리고 나르고 하는 고강도의 중노동을 시킨다.
부모의 일을 몸소 겪어봐야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아이들이 아무리 첨단기계문명시대에 살아도,
사람이 잘 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사람답게 잘 살아가기 위한 성찰을 늘 했으면 한다.
부모는 이미 사고가 경직되고 꼰대스러운 발상을 하지만(아이들 눈에)
가상의 공간에서 시공을 넘나들며 살 아이들과의 접점은
우리는 사람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아~ 잊지 말자! 언제나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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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31 09: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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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꿈을 60대에 이루고 70대엔 꿈밭에서 노닐겠다고 새해 꿈을 기록해 본다... 기록이 있어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를 꿈꾼다. 2022년(내 나이 62세)을 맞게 돼 못 이룬 꿈을 되새김질 하다가 2004년에 서귀포로 이주한 직후, 기록해 뒀던 꿈 하나를 발견했다. 새해부터 10년 계획으로 내 소박한 꿈에 천천히 걸어가야겠다. ‘이래서 기록이 좋군!’ (2004년 기록): 자신을 갈고 닦아서 반짝이는 그 무엇이 있기는커녕 육아와 가사에 10여 년 세월을 훌쩍 넘기고 나니 세상사 돌아가는 변화에도 둔감하고, 젊은 치기를 부릴 나이도 지나 버리고, 실수해도 만회할 수 있는 시간과 기력도 그다지 허용되지 않는 마흔 중반의 나이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면 쓸쓸해진다. 내 인생 전체에 다가오는 가을이 그다지 풍요로운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인지, 밀려오는 조바심 때문에 명치끝이 심하게 아려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내가 무엇을 이루면 이 허전함이 채워질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원하는 것이란 항상 가변적인 것이어서 부족한 것이 채워지고 나면 또 다른 그 무엇을 채우고 싶어 하는 본능이 밀려오니 허전함은 채워도 채워도 공복감을 느끼게 하는 필요악의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전부인 것처럼 독려하고 살았어도 어느 순간 내 안에 깊숙이 잠재돼 갈무리돼왔던 내 꿈 하나가 꿈틀댈 때가 있다. 이루지 못할 꿈도 아닌데... 우유부단하고, 늘 현실과 타협하다가 끝내 꿈만 꾸다 말 것 같은 내 꿈 하나. 계산도 말고, 타협도 말고, 재지도 말고 우직하게 밀어붙여야만 이룰 수 있는 꿈 하나를 아직도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지 그 꿈 하나가 간간이 나를 후벼 파는 느낌을 받는다. 생계를 무시하고 비현실적인 꿈만 꿀 수는 없는 처지임을 너무나 잘 아는지라 적당하게 타협을 가미한 내 꿈은 야생화공원에 내가 기른 유기농산물로 차린 자연건강식당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것이다. 식당은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니나 생계 수단을 가미한 것이고, 야생화공원은 내가 평생을 쏟아 부어서 꾸며보고 싶은 비현실(?)적인 요소의 꿈이다. 돈을 쏟아 부어서 급조한 그런 인위적인 공원이 아니고 10년 정도 손때가 묻어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는, 작은 야산 하나 정도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는지... 그 작은 산에 작은 개울이 하나 나 있으면 더욱 금상첨화이겠고, 그 개울에 가재가 살고 있으면 얼마나 운치가 있을까. 군데군데 돌무더기에는 여름이면 하얀 찔레꽃이 눈부시게 피어나고, 개울가 갈대숲 옆에는 보라색 산붓꽃도 무더기로 데려다가 키우고 싶다. 갈대숲에는 빨간 잠자리와 노랑나비가 노닐면 좋겠고, 내가 좋아하는 엉겅퀴 꽃도 무더기로 피어나면 얼마나 기품 있어 보일까. 여름에 피는 하늘색 산수국도 데려다 놓고 싶다. 내 이름도 난초꽃이니, 산난초들도 데려다가 놓아야 이름값을 하려나. 작은 야산이 아니면 1천평 정도 땅이면 성에는 안 차도 그림은 좀 그려볼 수 있을까? 그동안 미뤄뒀던 작고 소박한 내 꿈을 60대에 이루고, 70대에는 그 꿈밭에 노닐어야겠다고 새해 꿈을 기록해 본다. 아아~꿈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내 꿈 하나.(꿈이라서 행복한 거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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