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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일주일간의 외출

by 농부김영란 2012. 10. 7.

 

 

일주일간의 여행(?)동안 일상을 벗어난 것만해도 피곤한 줄 모르겠더니

집으로 돌와와서는 입이 다 헐고 몸이 어찌나 곤한지 평소 일한거보다도 더 중노동이었다.

엄마 돌아가시고나서 첫 명절에다가 엄마 산소는 내가 벌초를 하겠다는

뒤늦은 효심이 발로하여 친정을 거쳐 시댁까지 경유해서 명절을 보내고 돌아오려고

귤밭일을 부지런히 해놓고 수요일(추석은 일요일) 집을 나섰다.

서귀포로 이사하고는 집안의 경조사를 제외하고는 명절때는 남편만 대표로

참석하였기에 이번에는 내가 엄마 산소를 경유하여 시댁까지 다녀오기로 하였다.

엄마를 떠나 보내고 내 맘이 진정이 안되어서 배회하다가 간신히 마음 붙든 것이

가을 기운이 멀리 감지될  구월 초입 즈음이었다.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나를 추스리며...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엄마에 대한 자책감과 회한을 떨치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되찾는 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의식적으로 나를 밝은 곳으로 인도하니까

감정이 밝은쪽으로 기울어 갔다.마인드 콘트롤의 효과...나 다움을 되찾았다.

 

본의 아니게 농부가 된 남편(내가 귀농으로 이끌어서)이 때론 안스러워(^*^)

명절때는 형제들과 만나서 회포를 풀라고 늘 우리집 대표로 보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참석하기로 한데는 엄마 산소 벌초를 핑계로 내가 나선 것도 이유였지만

내게는 더 중요한 한가지 이유가 있었기도 하였다.

아니 다른 이유보다도 더 강렬하고 절실했던 한가지 이유가 있었다.

 친한  내 친구가 작년에 암이 걸려서 투병중이라 무엇보다도 그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그 친구는 사선을 넘나드는 고통을 이겨내고 한동안 일체 소식 단절이었다가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연락을 했다.불원천리 달려 가고 싶었지만

사람살이가 늘 속박되어 있어서  훌훌 떨치고 나서기가 쉽지않아서

명절때 핑계로 집 나서서 그 친구를 만나고자 작심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온 내 친구가...

어느날...청천벽력 같은 암선고를 받고

삶이 아득해졌을 그 기분을 제3자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뒤늦게야 그 소식을 듣고서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기도밖에는...

오뚜기같은 그녀가 언제나처럼 그렇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올것이라 믿으면서 멀리서 기원했다.

 

그녀가 겪어냈을 그 시간들을 내가 어찌 다 헤아릴수가 있을까.

 

친구를 만나려고 시간 맞추어서 집으로 찾아 갔다.

공기좋은 요양병원에서 요양중이었지만 집으로 나와서 나를 만난다하여 찾아갔다.

 

우리는 만났다.

서로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지, 잘 이겨내줘서 고마와~"

항암지료로 머리가 다 빠졌던 친구의 머리카락이 한뼘으로 자라 있었다.

"우리는 사막에 갖다놔도 살 인간들이야~"하며

언젠가 동병상련의 서로를 대견해하던 우리들이었었다.

"나는 너가 이겨낼 것이라 믿었어~

하느님이 이제는 너를 위해 살라고 또 다른 기회를 주신거라고 생각해.

이제는 너만 생각해,매일 매일 행복한 너만 생각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일거라고...늘 관성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어느날...날벼락같은 암선고를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친구를 생각하니

안쓰러움과 대견함과 아픔과 기쁨이 교차했다.

 

우리, 잘 살자~!

행복하게 살자!

감사하게 살자!

 

자고 가라는 친구에게 손님맞이의 번거로움을 주지 않으려고

짧은 해후를 하고 돌아섰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삶이,매순간 특별한 순간으로 여기지게 된 계기가 되어

우리는 남은 삶 황금처럼 귀하게 여기며 살아내야겠지.

 

올해는 엄마와 친구로하여...내 삶을 많이 헤아려보게 되었다.

내 할머니가 내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서

나도 지난해부터 기진해오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었다.

선을 넘어서면 안된다는 준엄한 삶의 소리가 전해져 올때는

균형을 잡으려고 나를 들여다 보았었다.

 

 

큰언니가 기다리고 있는 엄마네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차편이 다 끊어졌지만 심청 오라버니(송이장수)에게 SOS를 청하였더니

기꺼이 나와서 태워 주었다.이제 우리는 편안해진 나이가 된 것 같다.

낯가죽 두꺼워진 내가 하는 말,

"오라방이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내가 무덤 가서 울어 줄게~"이런 장난도 치는 나이가 되었다.

건강이 최고인 나이가 되었기에 이제는 부귀영화를 꿈꾸지 않고

소박한 삶에 건강만 하라고 덕담을 나눈다.

 

 

 

 

 

 

 

 

 

 

 

 

 

 

 

 

 

 

 

 

 

엄마네 집 뒤 1000여평 밭은 큰 언니 소유이다.

7년전에 큰 언니는 그 밭에 구절초를  심었다.

영평사 절에 갔다가 구절초가 항암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지스님께 특별히 청하여 몇뿌리 구한 구절초가 번식하여 온밭을 가득 메웠다.

재배라곤 하나 풀만 뽑아준 상태라서 자연에서 자라는 것과 같다.

그동안 키우기만 했지 판매해 본 적이 없다.몇년전 지인이 귀한 것이 너무 아깝다고

구절초꽃차를 해서 팔라고하여 시도를 했는데 일만 번거롭고

파는 일도 해보지 않아서 흐지부지 되어 버렸었다.

때마침 내가 갔을때  구절초밭은 꽃이 피기 시작하여

공기가 은은한 구절초향으로 가득 메웠다.

보름달이 되어가고 있는 달밤에 바라보니 선모화라는 이름이 무색지 않았다.

선모화란 신선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구절초는 몸을 따뜻하게하여  여자들에게 좋다 하며

암을 녹이는 역활을 하여 항암작용한다고

영평사에서는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한다.

 

나도 몇년전에 언니에게 뿌리를 공수받아서 귤밭가에 심어놓고

내 감성을 달래곤 했는데 향은 언니네 밭에서 나는 것이 비교가 되지않게 진했다.

큰 산아래서 밤낮 기온차가 심한 곳이라 큰언니네 구절초는 최고의 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이 아까운 것을 팔아라고 언니에게 말해 보았지만

꽃을 따서 술 한병을 담가보니 예삿일이 아니라 가격 매기기가 어려워서

어떻게 판매해야할지를 모르겠다.그동안 언니가 공들인 것을 생각하면

수고비라도 나오면 좋을텐데...하며 아쉬웠다.

이 아까운 구절초...혹시 필요하신 분은 연락 주세요.^*^

(필요한 분은 몰라서도 못 살텐데요)

가격은 모릅니다. 찾아보면 남들 파는 가격이 있을테지요.

 

 

그리고 내 친구가 먹고서 항암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개똥쑥도 소개하고 싶다.

나도 개똥쑥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전에는 들판에 있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귀한 것은 거의 멸종 되다시피하였다고 한다.

혹시 개똥쑥을 찾고 계신 분은 연락 주세요.

개똥쑥은 암이 걸린 내친구를 위하여 친구 남편이 모종을 어렵게 구하여

조금 재배 하였는데 지극정성 키워서

필요한만큼 쓰고도 여유가 남았다고 한다.

 

 

 

 

 

 

 

엄마네 집에서는 이틀을 머물렀다.

하루는 엄마 산소 벌초하고...하루는 구절초 꽃도 따고

송이장수 오빠의 아버지(내게는 작은 아버지) 산소 벌초 하는데 따라 갔다.

아주 오랫만에 못 뵌 분들 다 뵈었다.

엄마네 집에서 큰 언니는 머물면서(요즘 언니는 그곳에 머무르고 계신다)

엄마와 소통하던 이웃들과 잘 지내시는데

내가 간 이틀 사이에도 이웃들이 자주 찾아 오셔서 산에서 채취한 버섯을 가져다가 주셨다.

나는 자연에서 나는 향나는 식재료를 너무 좋아하여 이 버섯들로만 밥을 먹었다.

버섯이 어찌나 맛있는지 다른 반찬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지난 봄에는 이곳에서 나는 냉이를 사서 부쳐 달라고 하여

나 혼자 한 푸대를 다 먹고나니 춘곤증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이곳 산은 보물을 가득 품은 보물 창고 같다.

공기 자체만 해도 보물같다, 어찌나 맑고 청아한지...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밤에 바라본 달도 너무 맑아서 감전 될 것 같았다.

제주도 공기가 맑다고 생각 했는데

이곳에 와서 달을 보니 비교가 안되었다.

달빛이 얼음장같이 투명하고 쨍쨍했다.

달빛이 예리한 칼날처럼 날이 서있는 것은 그만큼 공기가 맑아서이다.

 

 

 

 

 

 

 

 

 

싸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이었다.

자연은 이렇게 철철이...어여쁜 옷으로 갈아 입는다.

내 가슴이 마구 뛰있다.살아 있어서 느낄수 있는 것들이다.

아~ 고향 산천 풍경이다.

 

 

 

 

 

 

작은 아버지 산소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고마리와 물봉선화가  누가 보아주든 말든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는 이 꽃들과 내려다보이는 황금 들판때문에 덜 심심하실 것 같다.

사실 돌아가신 이는 우리들 마음안에 살고 계신데도

이렇게 연을 추억해본다. 내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오십이 넘어서야...자꾸만 뿌리가 의식 되었다.

 

 

 

내게는 들추지 않았던 가족사에 대한 까칠한 부분이 있다.

아직도 내가 삶에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우리집이 곤두박질로 치닫게 했던 장본인이 아부지라고 믿었던.

사춘기 소녀의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본 현상과 그로하여 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곤궁한 청춘이 반추되어 나는 아부지와 단절을 했었다.

사업실패...그로하여 피폐해진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아부지가 내 나이에 외도를 하여 엄마 가슴을 아프게 한 사연이 있어서였다.

나는 절대적으로 엄마 편이었다.

오래...나는 방황했고, 마음 문을 닫고 살았다.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내가 겪는 어려움을 안으로 동여매고

누구에게도 내비치지않는 모난 자존심이 나를 지탱하기도하고 상처주기도 했었다.

중풍이 걸려 조강지처 품으로 돌아온 아부지를 엄마는 받아 들였지만

나는 이해해주지 않으려고 도리질을 했다.

아부지가 돌아 가실때 산소에 한번 가고...그 이후...산소에도 가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애틋하고 애절한 마음이 더 절절했던 것은 엄마가 마음고생을 많이 하셔서였다.

 

이런 글을 쓰는 이 순간...이제사...내가 그 모든 것을 받아 들였다는 증거이다.

엄마가 돌아 가시고 엄마를 아부지 산소와 합장을 하였다.

엄마 산소를 아부지 산소옆에 가묘를 하여 두었지만

왼쪽으로 돌아 가는게 아니라고 합장하는게 좋다하셔서 그렇게 하였다.

엄마도, 아부지도 그렇게 하시고 싶으실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의 아들딸은 5남매이다.딸넷에 아들 하나.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는,그런 세월을 사시고

지난 여름 엄마는 하늘나라 아부지 곁으로 가셨다.

자손인 나부터  근근히 자신 몫 사는데 급급하여 그리 화목하게 지내지 못한거 같다.

산소벌초는 요즘 바쁜 도시 자손들 대신해서 농협등에서 대행도 하지만

우리는 지난해 산소앞에 사는 분께 부탁해서 벌초를 했는데

올해는 내가 앞장서서 직접 벌초하러 가자고 했다.

엄마가 돌아 가셨지만 그렇게라도 뵙고 싶었고, 아부지와도 이제사 마음의 화해를 하였다.

바쁜 사람들은 억지로는 하지말고 형편 되는대로, 마음가는대로 하자고 하였다.

강요도 부담도 주지말고, 자신의 형편이 닿는대로, 그렇게 하자고 내가 강력 주장하였다.

맏이니, 장손이니 하면서 도리를 하라고 주장하면

갈등이 생기고 불협화음까지도 생길수가 있으니

똑같은 자식이니 형편되는대로 하되 이럴때 모여서 형제들 얼굴도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각자 사는게 바빠서 한자리에 모이는게 쉽지 않으니

이런 때에라도 만나서 얼굴도 보고 우애를 다졌으면 좋겠다고

이제사 마음 빗장을 연 내가 솔선수범(^*^) 하기로 하였다.

우리도 이제 누가 먼저 갈지도 모르는 인생들이니 반목은 사양합니다~

 

다음번에는 산소주변에 배롱나무 몇그루 심어서

꽃 좋아하는 엄마 심심치않게 해드려야지 하며 벌초를 끝냈다.

 

 

 

 

 

보름달맞이하러 달맞이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그리고는 오랫만에 시댁 큰집으로 향했다.

시댁 형제는 6남매, 4남 2녀, 그중에 남편은 막내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남과 맏며느리는 하늘이 내린 어깨 무거운 짐이기도 하고 권한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권한이 많았지만 이제는 의무만 남았는지도 모르는 무거운 자리.

맏이는 태어날때부터 의무를 지고 있어서인지 마음가짐이 어딘가 다른 것 같다.

큰 아빠도(큰아주버님)  큰 엄마도(큰형님), 큰 조카도 역시 다르다.

그 어느 집이든 큰 집이 잘 살고 잘해야 가화만사성이 되는 것 같다.

큰집은 경제적으로 치면 특별하게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알뜰하게 잘 꾸려 오셔서 조상님 잘 모시고 동생들 우애있게 잘 다독여주시니

그것만해도 감사하고 감사하다.6남매 모두 성격이 무난하고

이제는 모두 아이들이 장성하여 손자 손녀를 보아서 할머니 할아버지 반열에 올랐다.

아이들은 커가고 우리들은 늙어가고 있음을 보니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꽤 되었다.

 

선생님으로 정년 퇴직하신 큰 아주버님은 퇴직하신지 4년째이시다.

은퇴후의 삶에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남편과 큰아주버님을 보면서 느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어찌나 격식을 차리는지 숨이 막혔던 어린 시절.

그런거 무시하면 돌쌍놈 소릴 듣는 갱상도 가스나가 갓 시집와보니...

제삿상이 우리가 지내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다.

자유분방(^*^)한 제사상 차림이 낯 설고 속으로 은근히...예법을 모르나 싶었다.

지방마다 풍습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니 어찌 잣대 하나로 따지겠는가 싶어서

조금 여유롭게 바라보니...시댁 제사상차림이 편안하게 보였다.

조상님도 알아서 다 찾아 드실터.^*^

 제사상, 차례상 등등 조상을 기리고 음식은 자손들이 나눠먹고 우애를 다지는 것일진데.

요즘은 제사도 여행가서 지내는 판에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서

한상에 차린 음식을 조상께서 못 찾아 드시겠는가?^*^

 

상다리가 휠라하는 상을 보니 보기만해도 배가 부르다.

이렇게 모여서 조상도 기리고 형제들 얼굴을 보게 되니 참 좋다.

물론 큰 형님은 그동안 여러모로 힘드셨을 것을 알지만

큰형님은 조상님이 다른 복을 내리셨으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심성 착한 두 아들과 이쁜 며느리 복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큰 아빠가 정년퇴직 하시고 받으시는 연금으로

생활비 걱정을 안하게 된 것도 다 조상님이 내린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집은 나와 예슬이가 대표(^*^)로 참석했다.

(예슬이는 청주에서 올라옴)

 

 

 

 

 

 

 

이번에 가서보니 시댁 조카들이 거의 결혼을 하여

2세까지 낳아서 며느리들이  전적으로 하던 일을

이젠 조카와 조카 며느리가 척척 알아서 전도 부치고

부엌을 점령(^*^)하여 나는 어느덧 어른 행세를 하게 생겼다.

결혼들을 하니까 조카들이 알아서(^*^) 설거지도 척척하고

음식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고...

나는 이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본인들은 어쩌면 명절 증후군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이런때 모여서 우애를 다지는 것이라 몸은 조금 힘들어도

우리나라의 제사풍습은 미풍양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특하고 대견한 조카와 조카 며느리가 너무 든든하고 이뻐 보였다.

 

 

 

 

 

 

 

 

 

일주일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이번에 나는 조상님도 다 뵙고

친척들도 거의 모두 만났다.

시댁 조카들이 낳은 2세들도 다 만나 보았고

모두들 건강하고 잘 살아가는 듯 보여서 마음 든든했다.

 

살면서 희노애락, 없는 집 있겠는가?

모두들 자신의 몫을 잘 감당하고

잘 살아주어 감사하고 감사하였다.

 

 

 

 

 

이 책은 내가 마음으로 늘 추앙(^*^)하는

우리 반디농장 회원인 섬님이  공저로 쓴 여행기 책이다.

섬님 블로그에서 책을 냈다는 글을 읽고

일단 책부터 구입하여 읽고나서 거하게(^*^) 독후감을 쓰리라 맘 먹었다가

책 구입을 못하여 차일피일 미루어 이번에 서울에 간 길에야 구입하곤

돌아오는 비행기와 셔틀버스에서 내리 읽은 책이다.

여행기 종합선물세트 같이...여러명의 여행작가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다른 느낌으로, 독특한 표현력으로 쓴 다양한 여행기가

읽는 내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섬님의 여행기는 그녀가 품고있는 보석같은 이야기중의 빙산의 일각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앞으로 펼쳐낼 특별한 그녀만의 생각의 세계를 엄청 기대하고 있다.

재능만으로 풀어내는 필체가 아니라 따뜻한 심성과 사랑,

 삶이 녹아든 진정성에다가 그녀만의 예민한 촉수가 찾아낸

특별한 표현들이 요소요소 무릎을 치게 만든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그녀가 청춘에 다 못 풀어낸 재능을, 

연륜이 주는 너그러움과 사랑을 가미하여  이제 폭포수처럼 쏟아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날기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녀의 비상을 나는 진지하게 기대하고 있다.

이제 그녀는 날개짓을 시작한 것 같다.

 

http://blog.naver.com/wwfma(섬님 블로그)

 

 

 

 

 

 

 

 

 

 

 

 

 

 

 

일주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장 먼저  나는 귤밭을 돌아 보았다.

우리 귤들은 11월 말에나 수확하는 조생귤인데

요즘 햇살이 좋은 날이 지속되어서 색과 맛이 잘 들고 있는 중이었다.

올해 귤나무들이 겪은 시련이 너무 커서 맘이 부대꼈는데

막바지 맛이 잘 들어주면 그런 시름 한꺼번에 날릴것이다.

그런데 신효밭에 극조생 귤나무 한그루가 있는데(한달쯤 일찍 수확하는)

 

이 귤나무에서 수능 치는 아이들에게 미리

귤을 보낼 예정인데 아직 익지도 덜한 귤들을

벌써부터 새들이 야단법석으로 달려들어 파먹고 있었다.

먹어보니 맛이 제법 들긴 했지만 "이누무 새 쉐이들을 능지처참을..."

말로 분풀이 해보지만 저들을 어이 당할꼬.

새놈들도 맛있는 것은 기 막히게 알아서 잘도 쪼아 먹는데

아예 한개를 다 먹으면 그래도 조금 용서를 해보겠는데

하나씩 콕콕 쪼아서 쓰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은 염통이 터질 지경이다.

벌레에게 당하고, 태풍에게 얻어맞고,새들에게 뺏기고...

그리고 남는 것...그것을 우리가 취해야 하는지라...

 

마음 비우는 도리밖에 없다.

농부 되고나서 맘 비우는 연습은 엄청 한다.

 

 

 

극조생 나무에서 잘 익은 것 두개 따 봤다.

벌써부터...맛있다.

새놈이 탐할 맛이다.

 

올해산 귤도 맛있을 것 같다.

 

 

 

 

 

 

 

 

 

 

 

 

 

 

 

 

나를 모두 다 내보이는 것은,

 더 당당히...나답게 걸어가려 함입니다.

인생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 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마음을 잃지 않는 성품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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