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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밭

전정의 대장정이 끝났다.

by 농부김영란 2011. 4. 18.

 

비라도 제발 와 주었으면...휴식을 바라는 맘이 이렇게라도 염원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내 일하는 것을 말릴 사람은 없어도 봄에는 준비할 일이 태산이라

비 온다는 핑계 아니면 햇빛 쨍쨍한 날에 쉴 호사를 일요일조차 내기가 어렵다.

온전한 농부로 태어나려고 웬만한 농부들도 다 전정 기술자를 써서 하는 전정조차도

잘하든 못하든 내 손으로, 내 맘대로 해보자며 덤빈 전정(귤나무 가지치기)이

이제사 전정의 묘가  보이는데 이제 와서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남편은 자신이 못하는 일은 애시당초 도전을 포기하고 기술자에게 모두 맡기자고 하는 것을

내가 기술잔데 무신 소리야~하면서 귤밭 두개는 내가 맡으마~하고 큰소리 쳤다가

효돈밭(믿음밭)이 작년에 귤이 하나도 안 열린데다가 초보농부가 세번이나 퇴비를 준탓에

온 밭이 정글이 된지라 내가 며칠 자르다가보니 도저히 끝날것 같지않아서 백기를 들었다.

호근동 유기농밭(희망밭)만 내가 맡기로 하고 나머지 밭들은 기술자를 써서 했는데

효돈밭을 내가 일부 했는데도 두사람이 꼬박 8일을 하였다. 남편과 나는 가지친 것들을 끌어내서 모두 파쇄를 하고...

수확 판매 끝나고 바로  봄일이 시작되어서 거의 하루도 쉴새없이 달려 왔다.

 

전정하는 일은 기술적인 일이기도 하여서 귤밭 일중에는 가장 일당이 센 편이다.

일당이 10만원에 점심값, 간식, 담배값등을 합하면 보통 일의 두배가 넘는 일당인데

내가 덤벼보니 기술적인 일도 일이지만 온 힘을 다 쏟아서 가지를 치는 일이라서인지

노동강도가 쎄서 전정하는 내내 내 몸이 부대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손이 부어서 가위를 쥘수가 없고 몸이 천근만근인데도

이상하게도 밭에만 가면 다시 일이 자동적으로 해지고 몸이 무거운 것도 잊어 버리는 것이다.

남편은 무모한(^^) 도전은  안하는 사람이라 이러는 내가 이해가 안된다며 혀를 끌끌 차니까

아프다고 내색을 해봤자 위로는 커녕 염장 지르기 일쑤라서 언제나 그렇듯 "내 좋아서 하는 일이니 누굴 탓하랴 ~"하면서

희망밭 전정을 꼬박 보름에 걸쳐서 했다.겨우 1300평 밭을 무슨 보름씩이나 할지 모르지만

내가 작년에 거의 전정을 하지 않아서 잔 가지가 심하게 엉켜 있는데다가

삭정이도 많고 그리고 올해에는 내가 아주 과감하게 전정을 하느라고 일이 많았다.

그동안 내가 내 맘대로 전정을 하고 관리를 해 온 탓에 이 밭과 나무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맡길수는 없다며 내가 덤빈 것인데 몸은 많이 부대꼈어도 내가 한 것은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겨울 한파와 냉해로하여 많이 초췌해진 나무들이

내 발자욱 소리를 듣는 날부터 기색이 달라졌다는 것을 나는 알기때문이다.

나무와 내가 하나의 마음이 된다는 것을...나는 귤밭에 들어서면 내내 느낀다.

내가 그 아이들을 쓰다듬고 위로하고, 사랑스런 눈으로 지켜 봐주고 격려하는 것을

나무가 느낀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볕 좋은 가을날에...어쩌면 이런 맛을 낼까싶게 기가 막힌 맛을 내는 유기농밭 귤들이 내뿜는

기분좋은 맛의 향연들이  귤나무와 내가 함께 일체가 되어 내뿜는 행복한 기운들의 결정체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귤나무를 바라보면 뿌듯해지고, 한없이 이쁘고, 사랑스럽고 기특하다.

내가 일이 힘들다고 늘 헉헉대면서도 그것이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었다면 어찌 여기까지 왔겠는가?

기초체력이 허약한 편이었던 내가 노동을 통해서 몸과 맘이 더욱 건강해진 것은,

자연 속에서 그 건강함을 전해받았기 때문이다.

 

옆밭을 돌아보니 작년에 우리가 한 것처럼 늦게까지 귤을 달아 두더니

나무들이 거의 고사직전까지 갈 정도로 상해 있는게 보였다.

내가 귤나무에서 완숙시켜서 내보내는게 좋다고 떠들어서인지 작년에는 여러군데에서

귤을 늦게 수확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관찰없이 준비없이 무작정 남 따라하다가 낭패를 보게 된 꼴이었다.

작년같이 심하게 눈이 내리고 기온이 떨어진 적이 없기에 나도 귤나무에서 귤을 얼리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체력이 떨어진 귤나무가 고사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몇년째 귤나무에서 완숙시켜서 귤을 따지만 11월 중순부터 먼저 익은 것을 따내려 주면서 가기에

그래도 귤나무가 심하게 혹사당하지는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일을 쉽게 한다고 아랫것까지 완숙을 기다려서

마지막에 한꺼번에 따내리니 그동안 귤나무가 귤을 지켜내느라고 온 힘을 다 쏟아 부어서 고사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귤나무가 쓰러질 지경이 되는 것은 감안도 안하고 나무에 오래달아두니 옆밭 귤나무는 아주 심하게 상한 것이 보였다.

남의 집 귤나무지만 내 가슴이 아렸다.우리밭도 다른해보다도 겨울에 너무 힘들어서 초췌한 빛이 역력하여

그 사이 액비 영양제를 밭마다 세번이나 뿌렸고, 희망밭에는 지난번 만든 퇴비가 늦어지는 것 같아서

유기질 퇴비를 사다가 먼저 한번 뿌려 주었다. 나무 수세 회복을 위해서 올 봄에는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겨울 나무들이 겪었던 시련을 감안하여 각별히 영양과 수세회복에 만전을 기하려고 한다.

그냥 열매만 수확하려고 욕심을 내면 나무는 지쳐서 고사하기 마련이다.

유기농하면 나무 죽인다는 말은 게으르고 요행을 바라는 농부들이 쉽게 농사지으려다가 겪었던 일화이다.

세상에 귀한 것을 거저 얻으려고 하면 되는 일이 있던가 말이다.

 

그리고 늘 느끼는 것이지만 희망밭에는 밖에서 보기에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데

나무 사이에 들어서서 나무마다 눈을 맞추면 아주 건강해진 나무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나무별로 해걸이를 하는데 지난해 한해 푹 쉰 나무들은 기운을 잔뜩 비축하고 올해 축제를 벌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유기농 한다고 나무 다 죽이는게 아니라 일부 원래 허약하던 나무들은 몇그루정도 나빠지긴 했어도

전체적으로는 나무들이 아주 건강해진 것을 일일이 체크할 수 있는 것도 전정시기에 가장 관찰하기 좋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꼼꼼히 나무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관찰하면서 전정을 하였다.

다행이 남편이 이제는 한 몫을 담당 하는지라 소독을 맡기고 나는 전정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올해는 그동안의 관찰과 시행착오와 경험을 모아서 내실있는 운영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남편도 퇴직후 삼년째가 들어서니 이제사 조금 농부다워지려고 한다.

농삿일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 오직 나무들을 돌보는 일이라서 혼자가는 길이라

처음에 이런 환경에 젖는 시간동안에는 많은 수련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태생적으로 꽃을 좋아하여 발 아래 피고지는 풀꽃들만 봐도 하루종일 심심하지 않는데

남편은 지금까지 회사생활하면서 사람과 부대끼고 살아온터라 혼자서 일하는게 쉽지않은 적응이었을 것이다.

가끔 가다가 내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농사는 내가 지을터이니 취직하는게 어떻소?하고 넌즈시 물으면 도리질을 한다.

책임자 스타일이 아닌데 책임자 자리를 부지하고 있으려니 남편은 매일 회사출근하는게

아오지탄광 끌려가는 표정이었어서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가슴이 옭죄었었다.

오즉하면...내가..남편의 명퇴를...기꺼이 받이 들이고, 심지어...내가 먹여 살리마~하고 선언했을라고...

인생 후반부는 바톤 체인지~하고 선언 했는데 이제보니 전반전은 그냥 예행연습정도고

정말 고난이도를 묘안을 짜내서 구사해야하는 인생 후반부를 내가 떠맡는다고 큰소리 쳤으니

내 미련함에 무릎을 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젖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달려가 보는 중이다.

몸과 맘이 이 현실때문에 부대껴 올라치면, 내가 전생에 니한테 빚을 많이 졌나부다~하며 달랠 수 있는것도

이 나이쯤에서 오는 맘의 여유인가 싶다.이 나이에 세상에 포용 못할게 무에 있겠노~  

 

 

 

 

그 사이...일부러도 찾아가서 만나보고프던 지인들이 두팀이 다녀갔다.

섬님 일행과 초등동창 친구들.일과 피로때문에 늘어지던 의식이 새로운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탄력을 되찾았다.

전해주는 향기를 곱씹으며 인연의 향기를 반추하고 있다.

 

35년만에 만난 초등동창 재희(중학교도 동창)는  야리야리한 내 어릴적 모습을 간직 하였다가

새깜둥이 농부 아지매 모습을 보고 맘이 짠하다고 내내 말하였다. 모두들 도시 아줌마들이라

새벽부터 일어나 분단장하고 누가누가 고울까 키재기 하는듯 하는데

얼굴에 로션하나 바르면 끝인 나와 대조가 되었다.

나는 햇볕과 바람을 일부러 가리지 않고도 당당하고 자유로운데

새까맣게 그을리고 얼굴에 잡티투성이인 내가 안스럽게 보이는지?

온실의 화초같은 그녀들과 들판을 마구 뛰어 다니는 야생마같은 내가 만나서

세월의 간극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진심어린 사랑이 통했기 때문이겠지...

 

섬님과는 서로가 아주 다른듯하면서도...내밀하게 잘 통하는 우리는 전생에 이란성 쌍둥이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말하지 않는 그 어떤 속내도 읽어낼 수가 있다.

그녀는 지인들께 내 평을 이렇게 한다."이 여자. 촌시런 척 하면서 첨단을 걷는것 같단 말이야~

나는 말로만 하지만 이 여자는 행동으로 해"

나는 그녀을 이렇게 표현한다."겉만 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고고한 우아부인 같기도 한것 같지만

속 깊이 들어가면 말랑말랑 따뜻한 인간성, 의리의 지존이야"

우리는 처한 환경이 너무나 다른 것 같으면서도 서로에게 끌리는 그 무엇을 공유하고 있다.

내가 꾸는 꿈중에는 좋은 사람들과 남은 여생 사람의 향기에 취해서 살아가보려고 한다.

내 안에 보석같은 인연들 몇개만 품고 있어도 나는 세상에 그 누구도 부러울게 없는 행복한 사람일 터.

 

섬님의 빛나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wwfma/80128470195

 

전정을 다 끝내고나니 하늘을 날아 오를것 같다.

돌아서면 소독, 퇴비주기, 또 소독...그래도...큰 봄일은 다 한것 같은 오늘 이 기분

오후에 비 온다는 핑계대고 컴 앞에 앉은 햇빛 쨍쨍한 아침이다.간만에 야호~~~~신난다.

 

 

송악산 입구 유채밭

 

 

20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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