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민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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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과 입 운동만 즐겨하는 내가, 야구열기에도 축구열기에도 심드렁했었지만 2002년 우리나라에서 4강까지 진출했던 월드컵 열기에 합류한 후부터는 월드컵 경기 때만 되면 나도 한 몫 끼여서 12번째 선수가 되어 응원에 목청을 돋우게 되었다.
2002년도의 축구 열기는 대단했었다. 서울에 살 때이므로 아직 솜털도 보송한 막내를 등에 업고 두 아이를 손을 잡고 광화문까지 진출하여 응원하는 열의가 내게도 있었다. 지하철이 막혀서 걸어서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세 아이를 대동하고 100만 인파가 넘는 광화문까지 진출했었으니 “우리나라가 4강까지 안 갈 수가 있었겠나”하며 응원에 일조를 한 나를 자화자찬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빨간 티셔츠에 얼굴에 태극문신이나 응원봉을 들고서 목청껏 환호하던 그 감동이 귀에 쟁쟁하고 고스란히 가슴에 남아 있다. 2006년도 제주도에 내려왔었을 때도 우리는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서 새벽 두시에 하는 경기에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깨워서 월드컵 경기장까지 달려가서 응원하는 월드컵 마니아가 되었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하나 되어 애국자가 되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목청이 터져라 대~~한 민국을 외쳤던 적이 있었던가? 심지어 개까지도 오~필승 코리아 머리띠를 두르고 이마에 태극문신을 그리고 길거리에 나오는 정도이니 우리들의 하나된 응원은 다시 한 번 결속시켜주는 계기가 되는 것을 몸소 느껴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첫 해외원정 16강 진출 업적을 달성하고 더이상 우리선수들이 뛰는 것을 볼순 없지만 결승까지 마음 놓고 즐길 수 있게 16강 진출까지 해준 우리선수들의 선방에 감사한다. 그리스전, 아르헨티나전, 나이지리아전, 우루과이전까지 한경기도 흥분하지 않은 때가 없었고 첫 경기 그리스전은 선전에 마음이 앞서서 이미 4강까지 온 기분이었다가 너무나 맥없이 무너진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수비수도 없고, 공격수도 없고, 골키퍼만 있구나 하고 장탄식을 했었다. 즐기는 스포츠이지만 결과에 쏠리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나보다.
정치적 이념으로 적이 된 북한이지만 엄연한 우리 동포인 북한선수들이 온 몸을 불사르는 경기를 보고 비록 졌지만 이긴 것 같은 희열을 느꼈었다. 지고도 박수를 보내는 경기가 있고 이기고도 씁쓸한 경기가 있다.
고 3엄마인 나는 경기때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를 불러내어 집에서 잔치상을 봐놓고 응원을 했고 아이들과 대~한 민국을 목청껏 외쳤다.
이 날만큼은 이웃 눈치 볼 것도 없이 고래 고래 소리 지르고 응원해도 합법화 되는 날. 온 국민의 축제 일이었다. 이날 만큼은 애국자 아닌 국민이 없었다. 이념의 국경이 모호해지는 이 시대에 살면서 이렇게 한민족이 하나 되어 뭉칠 수 있는 계기가 있던가?
정치도 이렇게 온 국민이 환호할 수 있도록 명쾌하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도 한동안 내 맘 속에서 이명 현상처럼 <대~한민국>의 구호가 울려 퍼질 것이고 그 울림이 내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임을 상기시켜 줄 것 같다. 선수와 국민 모두 하나 된 대한민국 태극 용사들 만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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