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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빠진 남편

by 농부김영란 2004. 10. 25.

부부는 살아가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닮은 꼴을 만난다 했던가?

남편과 나를 사람들은 닮았다 한다.동글동글하고 비교적 동안인 이미지와

둘다 안경을 쓴것, 둘다 헤비급에 속한다는 점...

외형상의 이미지가 닮아 보이나부다.

 

...살다보니 닮아간 부분도 있을것이고, 서로가 닮은꼴에 이끌려 인연이 맺어진지도 모르겠다.

요즘 대중매체에 많이 등장하는 B형 남자와 B형 여자의 만남이다.

돌아보면 큰 우여곡절은 없었던 것 같고...자잘한 감정적인 충돌은 있었던 것 같으나

거의 일방적으로 내가 KO패 당한 기억뿐이다.

말로서는 날 이기지 못한다 판단한 남편이 내가 문제 제기를 하면

입을 꼭 다물고...절대 답변을 안하기 때문이었다.

말 안하는 남자가 제일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다.

난 이부분에서 B형의 고집을 확인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지경이나

나도 B형인지라 나와는 또다른 면을 보고 B형의 특징이라고 단정 지을수는 없을것 같다.

한때는 대화로서 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시도를 수없이 했으나

이제는 적당히 체념하고...일방 통보나(?) 기분 좋을때를 봐서 유도하는

작전을 쓰기도 하나 그도저도 실은 이제는 덤덤해 지는 것을 느낀다.

사랑의 일종인지 정체가 모호한 연민이 남편에게 생기기 때문이다.

 

사랑 표현에 곰살스럽지 못한 나인지라

그런 마음이 들때면 슬며시 맛있는 것을 해준다든지

아이들을 시켜서 "아빠 힘드신데 뽀뽀 열번 해드려라"는 식으로

내 연민(?)의 마음을 간접 표현하기도 하는 구닥다리 정서이지만

호들갑스럽게 사랑 표현하다가 조금만 힘들거나 서로 맞지 않는다고

순간에 쪽박을 깨버리는 사랑보다야 이런 내 방식이 내게는 훨씬 편하다.

(어쩌면 남편은 애첩기질을 부러워하고 내게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전형적인 본처기질로 살아가고 싶다.^^) 

 

 

IMF를 보내고...그 후 몇년...대기업에 몸 담고 있는 남편은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딱 사오정 세대이다보니

그 아내로서 산 몇년 세월이 내게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 부서의 책임자가 되어 막내 기질의 여린 남편에겐 무지 힘들던 시절이었다.

매달 영업 매출 신장에 머리를 짜야하고 직원 관리등등...

리더보다는 참모로서의 역활이 더 어울리는 남편인데 리더 역활을 맡았으니

마치 매일이 아오지 탄광으로 출근하는듯 남편은 웃음을 잃어 갔었다.

 

남편의 무표정과 어두움이 계속 되면서 난 마음속에서 하나씩 기대치를 내려놓기 시작했고

이제는 내가 생활의 백짓장을 마주 들어야 할때가 다가옴을 느끼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부도 명예도 건강함을 잃고서야 무슨 소용이겠는가하는 깨달음이 밀려오고

남편에게 책임자 자리를 반납하라고 이르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맞는 옷을 입어야 편안할 터...

 

그때부터 난 남편의 퇴직을 미리부터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마음을 비우고 살고 있다.

스트레스 받아서 암 걸리는 것보다야 내가 마음 비우고 사는게 낫다고 판단.

그런 생활이 서울 살이의 요 몇년간이었다보니 서울에서의  생활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곳 제주도로 내려 올때는 이미 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제주도 생활은 내가 재 출발 하기전에 잠깐 주어진 보너스 기간이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즐기고 누리리라 다짐하고 내려와서인지, 마음을 비워서인지

요즘은 그 어느때보다도 마음이 여유롭고 편한 시간들이었다.

내게는 한시적인 유예기간이기도 하지만 남편에게 마음 편하게 직장 다니라고

말해서인지

남편에게서 요즘 몇년동안 보지 못했던 웃음과 여유를 찾은 모습에 감사하고 있었다. 

 

사는게 무엇이라고...그리도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단칸방에서도 행복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행복할 수가 있을 터.

하나씩 마음을 비우기 시작하니 내 마음도 훨씬 가벼워지고

작은 일상의 행복들이 내 안으로 날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요즘 남편은 시간만 나면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나간다.

세월을 낚는지 고기를 낚는지 알수 없으나 아직은 회사에 몸담고 있고

이렇게 취미 생활까지 곁들인 요즘 생활이 남편도 너무나 좋은가부다.

아예 제주도에 눌러 살자고 한다.

 "당신 혼자 즐기는게 배 아파서 그리 못하겠소"하고

일부러 강짜를 부려 보지만 남편이 삶의 여유를 찾은 것이  내심 기쁘다.

나도 요즘은 이곳 생활에 정이 들고 나름대로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와서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요즘의 시간들이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충만되게 느껴진다.

내가 건강에 자신이 생긴다면 이제 그 어떤 도전도 시도할수 있을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내 삶에 획기적인 기회와, 계기와, 전환점이 될 이곳 제주도 생활이다.

 

남편은 그제밤  회식이 있었다면서 두시에 귀가하여서

새벽 5시 반에 또 낚시를 간다고 서둘러 나갔는데

나도 어제는 시민 걷기 대회가 있어서 6시반에 둘째 아이와 집을 나섰다.

걷기대회 코스가 환상적인 바다 절경을 끼고 도는지라

힘든줄도 모르고 행복한 걷기를 하고 돌아왔는데

두시에 남편이 들어와서 잠을 깬지라 아침까지 잠을 설쳤기에

돌아와서 잠깐 낮잠을 청했는데 비몽사몽지간에

얼핏 남편이 바다에 빠질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회식때문에 잠을 조금밖에 못잔 남편이 잠깐이라도 졸면 바다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안한 마음에 핸드폰을 하니 전화를 받을수 없다한다.

몇번이나 계속해도 마찬가지...걷기대회에 참가하였다가  돌아올때만해도 전화를 받았었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불안하여 함께 간 분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 분도 연락없이 안돌아 온다면서 우리는 남편들이 가정을 팽개치고(?)

자기들만 즐긴다고 성토하면서 우리끼리  뭉쳐서 한잔 하자고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때 남편이 들어 오는 것이었다.

 

내 예감...정말 남편이 바다에 빠졌단다.

급히 나가느라 구명조끼도 안 입고 나갔는데 남편은 수영도 못하는터라

바다에 빠지는 순간 죽는줄 알았단다.발을 잠깐 헛디뎌서라는데

내 생각엔 아무래도 수면 부족으로 정신이 흐릿해서였을것 같았다.

남편이 바다에 빠져서 물속으로 잠겼을 그 순간...

어쩌면 내게 강하게 텔레파시를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그 순간에 내가 남편이 바다에 빠질것같은 예감을 했던 것 같다.

남편은 구사일생으로 동료가 던져준 낚싯대를 붙들고 나왔다 한다.

혼자 갔더라면 어찌할뻔 했을꼬.

때마침 물도 썰물때라 수심이 깊지 않아서도 다행이었다고...

안경도 깨지고 이마와 손에 타박상을 입고 다리도 찢어져서 피가 줄줄 흘렀다.

"아이구...과부될뻔 했구먼"하고 살아 돌아온 남편에게 농담삼아 핀잔을 보냈지만

정말...가슴 쓸어 내리는 사건이 아닐수 없었다.

 

모든 사고는 불시에 닥치는 것이라지만 어느정도 예고된 것이라 생각한다.

구명조끼도 갖추지 않고,세시간도 자지 않은 남편이 아직 체내에서는

분해되지 않은 알콜 성분도 남았을 것이고...

오후가 되자 몸이 나른하고 정신이 흐릿해지고 졸음이 밀려 왔을 것이다.

(남편은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남편의 안경을 새로 맞추고,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해주면서

취미 생활이니 적당히 즐기면서 하시라고 몇번은 다짐을 받아 두었다.

 

내가 남편에게 가장 약한 부분이 남편의 친 어머니가 일곱살때 돌아 가신 것이라

그 부분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져서 남편의 이기심도, 고집도 다 헤아리고

받아주며 살았다 생각 되는데 자녀들에겐 그 무엇보다도

부모가 건강하게 오래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최고의 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건강해져야겠다고 기를 쓰는 것도 내 개인적인 공명심이나 꿈때문이 아니고

내 아이들 곁에서 오래도록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남편이 없다고 생각하면...정말...아찔한 상상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 사별하고 혼자되어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여성을 최고로 존경한다.

 

살면서 방심할때마다 경고를 주시는 신의 의도는 무엇일까.

 

다시한번...삶을 점검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서로를 아끼며 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며

놀랜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는 중이다.

 

2002.10.25.英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