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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소망

by 농부김영란 2007. 1. 14.

이천칠년(2007년), 내 나이 한국 나이로 마흔 일곱이 되는 해이다.

적지않은 나이이다.십대 이십대가 바라보면...세대가 바뀐 어르신의 나이이고,

삼십대가 바라보면...꿈꾸던 바를 웬만하면 다 이루었을것 같은 나이이고

같은 사십대가 바라보면...희비가 교차하는 나이이다.

정상과 정상 가까이에 올라선 사람들은 자신감과 적당한 포만감과

사회적인 체면을 고려할 나이이기도하고,

그렇지 못하고 중간쯤에 왔거나 그 이하로(어떤 이유로든) 추락했거나 머무른 사람들은

초조하기도하고 자책감도 생기고,한편 동병상련의 사람들에게

더욱 연민과 정을 느끼는 시기이기도 한것 같다.

오십대를 아직 맞지는 않았지만...그때쯤은 이미 자신이  서야 할  자리와 위치를 인정해야만하고...

어느정도 타협하는 시기일것 같다.정상을 향하던 발버둥도 자신의 체력에 맞게 조절할터이고

정상이 아니라면 중간쯤의 지점에서도 자신만의 가치기준으로 행복을 스스로

조절할 줄도 아는 여유도 차릴때 쯤일것 같다.마흔 중반을 넘어서고나니

내게도 지천명의 오십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지

지난날과는 다른 마음가짐이 정돈되는 것을 보니 그렇게 느낀다.

삶과 적당히 타협하려하고, 내 그릇을 인정하게 되고, 넘치지 않도록 욕심을 버리려 하는 것을 보니

내 삼십대의 패기와는 다른 중용의 조화를 스스로 받아 들이게 되는것 같다.

농담삼아 내 육체적, 정신적 연령이 60대인것 같아...하고 스스로 내뱉기도 하는데

그동안 너무 인생을 숨 가쁘게 달려와서 지친 느낌이 들기도하고

쓸데없이 감정과 에너지를 낭비하여 정상은커녕 중간에는 왔는가하고 자책이 생기기도 하였는데

이제 그런 자조도 숨고르기를 하는 것을 보니...

40대는 바야흐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시기이기도 한것 같다.

 

 

 

 

 

4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내면으로 극심한 갈등을 떨칠 수가 없었다.

기울어가는 체력과 자존심과 여전히 안에서 불타는 야망(?)을 떨쳐낼 수가 없어서

안에서 치열한 혈투를 벌이는 일이 잦았다.꺾이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해 놓은 것도 없는데 어느새 생의 반환점을 돌고있다는 초조감에 불면증에 시달리곤 했었다.

깊은 사색없이 무조건 열심히만 달려온 길도 돌아보니...

지혜도 부족하고 열정도 부족하고 끈기도 부족해서였는지

맘에 흡족치 못한 것 투성이라...어느날은 우울증이라는 사치병에도 사로잡히기도 했고,

아직도 내 안의 가능성을 맘껏 내뿜고 싶어서 안달하던 시간이었다.

엄마이면서도...온전한 엄마이기보다 자신을 되찾고 싶어하였고...

아내이면서도 헌신과 희생보다는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자신을 이끌고싶다는

무모한(?) 용기가 점점 강해지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형체가 모호해져가는 내 모습을 인정하고싶지 않아 스스로를 볶아대는 시간들이었다.

그런데...사십대 중반의 나이를 전후해서...그 감정들이...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는것 같다.

작년초까지만해도 나를 찾아서...온갖 계획을 세웠다.

방통대 영문과 3학년으로 편입도 했었고,(결국은 이것은 일단 휴학한 상태이지만)

컴퓨터도 전과정을 6개월동안 수강하여 대략적이나마 전과정을 배웠고

그리고...큰 농사도 아니지만  경험이 일천한 귤 농사도 온전히 내 힘으로

전정부터 수확까지...그리고 택배까지...전 과정을 치루고나니...

지난해는 ....스스로도 많이 부대끼고(체력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도...

숨 가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싶은데...

그나마...결말이 스스로 만족하는 수준으로 매듭을 지어서 흡족하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단계가 된 것은...맘을 많이 비워낸 상태이니까 그렇게 된 것 같다.

피날래를 멋지게 장식하도록...그동안 나를 지켜봐 주었던 따뜻한 시선들과

마음들이 보내준 응원은...내게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었고

앞으로의 미래에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게 해 주었다.

 

 

나의 유년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가 공부쪽에 관련된 곳으로 대성(?)했으리라 생각하고

훗날 내가 요리사가 되었다고 했을때 도무지...연상이 안된다고 했다.

나의 청년기를 기억하는 사람들도...나는 또래 집단에서 공부를 제법하는 아이로 인식했었다.

우리 시절의 정서는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은 현학적인 책을 옆에 끼고

돗수 높은 안경에 전형적인 모범생을 떠올리는....그런 풍경 그대로였다, 외면적으로는...

헷세, 니이체, 사르트르...그런 난해한 책들도 범생이답게(?) 이해도 잘 못하면서 끼고 다니면서

억지로 이해하려 했었던 전형적인 보수세대의 마지막 주자답게 청년기를 보내었는데

실제 내 안에서는 늘...끼가 넘치려 하였고,요즘 아이들의 튀는 기질이

자꾸만 밖으로 넘치려했던 아이였다.

그때만해도 튀는 것은 웬만한 용기없이는 힘든 일이었다.

지금은 자유, 개성,감성, 창조...이런 것들이 특별한 가치를 발하지만

내가 교육받던 70,80년대까지만해도 시절은 보수적인 관점에서...거의 천편일률적인

삶의 형태들을 지향하고 있었기때문에 웬만한 용기로는 그 대열을 이탈하는 것이 힘들었다.

공부는  집중력으로 하는거라고 호언장담하던 나였는데도

이젠 글 한줄  책한권에도 깊이있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세월탓인지

아니면 내가 깨닫게 된 공평의 원리인지(인생 새옹지마)...난 이제는 현학적인 책은 고사하고

가벼운 책조차도 쉬이 빠져들지 못한다.진솔한 내음이 흠씬나는 삶 이야기에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빠져 드는데 그 외 글을위한 글이거나, 목적지향적인 책이거나

체험이 배이지 않은 글귀에는 감동이 일지 않는다.

 

그 시절 맘속으로만 끼를 간직하고...그냥 보편적인 삶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내 운명의 여신이 삶의 나침반을 돌려 놓으신 것은 우리집이 가세가 급속히 기울어

이십대를 맞기도전에 내 힘으로 내 운명에 도전해야만하는 상황이 발생한 때문이었다.

산전 수전 공중전 수중전을 겪었다고...가끔 농삼아 자랑삼아(?^^) 하는 말이

그간의 살아온 여정이 순탄치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환경때문이기도 했고, 내 기질때문이기도 하였다.

경제적인 가난이었지만 한번도 가난하다고, 슬퍼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정신적인 우월감(양반의식의 풍토때문인지)과 자긍심과

긍적적인 마인드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낮춰 본적도 없었고, 낮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가난한 시절이 불편은 했을지언정 나의 그 어떤 부분도 위축시키지는 못했었다.

오히려 부족한 어떤 것을 메우려고 쉼없이 날아 오르는 몸짓을 멈추지 않았던 계기가 되었었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삶답게 사는 것....타인의 빛깔을 흉내내는 것이 아닌,

오직 나만의 색깔로 살아내 보는 것...생각은 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여러 제약때문에 실천하기가 쉽지가 않은 일...

그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그런데 이제는 조금씩...현실에서 가능하고

내게 넘치지 않고 내가 해낼수 있는 부분까지라고 영역을 정했기에

조금씩 접근해보려고 한다.내 삶이 어느날 마감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 누구의 눈에도 화사하지않아 그냥 지나칠 이름모를 야생화가

아무도 봐주는 이 없어도 혼신의 힘으로 자신만의 향기를 품은

꽃 한송이를 피워내는 그 정신을 닮고 싶다.

젊은 날 내가 열망하고 맹목적으로 내달았던 정상이 아니더라도...

그 어느 산 중턱에 이름없이 피어나는 흔한 야생화일지라도...

자신만의 향기를 간직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그런 삶이 되고 싶다.

 

 

 

 

 

 

자연을 너무나 그리워하다가 마당있는 오래된 집 하나 구입하여

2년동안 매일 시멘트 바닦을 깨고 꽃씨와 꽃나무 유실수를 심어서 열매가 맺고

꽃이 피어 자리잡는 것을 뒤로하고 이곳 제주도로 떠나올 때도...

내 복은 거기까지이고, 그 꽃을 보고 누릴 사람들의 복인가부다고 맘을 훌쩍 비워내게 된 것도

나이가 주는 여유와 지혜와 타협인것 같다.

제주도에 일가친척 하나 없어도 이곳에 살아 봐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것도...

그냥 물 흐르는대로 받아 들이고...내가 서 있는 그 자리를 고향을 만드는 일에

또 열정을 쏟아내고 있지만...이제는...내 힘에 넘치지 않게만 바라려고 한다.

내 분수에 어긋나는 일은 바라려하지 않고

그동안 여유없음을 빙자해 베푸는 일에 인색했었나를 돌아보고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감사하고

사는게 힘들다는 이유로 행여 타인에게...상처주는 일은 하지 않는지...를 돌아볼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이제는 감사해야 할것 같다.

 

주변이 점점 삭막해져가는 것을 느낀다.

경제적으로는 옛날보다는 분명히 더 나은 생활을 하는데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이 일회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경시하고,도덕적인 것을 무시하는 세태가

과연 바람직한가하고 우려하게도 된다.

인간적인 가치관...은 경쟁력이 떨어지면 무조건 헌신짝 버리듯이 하는 풍조가

그 어떤 재앙이 되어 차세대에게 다가올 것인가가 걱정이 된다.

 

소망이 있다면.....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다.

 

스스로는...더 작게 몸집을 줄이는 노력을...올해는 해보려한다.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작게 가졌어도

최대한 누릴수있는 마음가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2007.1.14 英蘭

 

 

(화면이 좀 화사해 보이라고 예슬이의 요즘 그림들을 배경에 넣었다.

예슬이는 미술 학원을 1년 6개월 정도 서울에서 다녔고 이곳에 와서는 전혀 미술활동을

하지않고 있는데 예슬이의 진로에대해 신중하게 검토하는 요즘...

혹시나 예슬이의 잠재된 재능을 사장시키지나 않을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갈고 닦지 않아서이지 웬지 재능이 있는듯한 생각이 든다.

중 3을 맞는 예슬이의 장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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