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 예인이가 10월달 반장이 되었다고
귤밭에서 열매 솎기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나 닮아 숫기가 없는 아이들이라 (나도 심하게 내성적이었음)
아이들이 대중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고,남 앞에서는 쭈빗거리고
자기 의사도 제대로 못 밝히는 부분이 있어서 천성적인 부분이지만
후천적으로라도 자신감을 갖게 해 주려고 나름대로 아이들을 꼬드기고 있긴 했었다.
더구나 예인이는 내가 서른 여덟에 준비도 없이 들어 선 아이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뱃속의 아이도 생명체라 지우는 것은 죄라 여겨 " 지 복이 있으면..."하고 대책없이(?) 나은 아이라
아이가 초등 학교 들어 갈때 조기 입학을 두고 내가 심하게 고민 한 적이 있었다.
IMF 들어서던 98년도에 태어나서 그 후 경제적인 부대낌 현상이 극심한 사회현상에 늘 불안해서
내가 한 해라도 빨리 아이를 학교에 적응 시키고자 5월생인데 7살 입학을 시켰었다.
둘째가 유치원 3년을 다니자 타성에 젖었던지라 막내는 유치원 1년만 다니자며 미루었다가
그 해 10월에 갑자기 아이를 내년에 조기 입학 시켜야겠다고 결심케되어
또래들하고의 어울림에 적응 하라고 유치원도 4개월만 수료하고...
그리고 초등에 입학을 하였기에 그 막내를 바라보는 내 맘은 늘 애잔하기만 했다.
더구나...서른 여덟에 내 기가 바닥을 헤매던 즈음에 막내가 생겨서인지
아이가 기운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게 연약하여 모르는 사람도 지나가면서
"밥 많이 먹어라"하고 일러줄 정도이고 보니 그런 아이를 학교에 등 떠밀어 보내고자하니
내 맘이 편할리가 없는데도...내게 다가오는 위기의식때문에 한시바삐 아이를 학교에 적응시키고
내가 자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기에 눈 딱 감고 아이를 입학 시켰었다.
그런 처지다보니...막내는 그저 학교에 안간다하지만 않고 또래들에게 치이지만 않고
학교에만 잘 다녀주면 그 이상 바라지 않았다.부디 또래들에게 밀리지만 않으면하고...
연약한데다가 더더욱 얼굴이 아기티가 나는지라
우람한 둘째를 시켜서 간간히 막내 교실을 한바퀴 돌아서
혹여 개구장이들이 막내를 집적거리지 못하게 미리 방어벽을 쌓기까지 하면서...
그나마 기운이 팔팔했던 시절에 낳은 위의 두 아이에게는 강하게 키워야한다며
의식적으로 바깥으로 자꾸 밀어냈는데 막내는 태어날 때부터 내가 기운이 달려서
아이를 감당키 어려워서인지 거의 방목 상태로, 절로 커 준 셈이다.
큰 아이때는 아이 그릇이 유약하고 결이 너무 고와서 그게 너무 걱정이 되어
강아지를 사자 새끼를 만든다고 나름대로 치열한 과정을 강요한 적도 있건만
막내는 마냥 내 품에 안고, 아기 돌보듯 하다가(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덜컥 조기입학까지 감행한터라 아이가 학교에 적응만 해 주어도 더이상 바랄 처지가 아니었다.
위의 언니들이 상장을 받아오거나 반장이 되어 오는것은 "당연한 말씀"에다가 "기본"이고
막내가 어줍잖은 상이라도 하나 받아오면(거의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받기라도 하는것)
"가문의 영광"이요 "잔칫날"이라고 선언을 하니 큰 아이는 그래도 눈 감아 주는데
샘 많은 둘째는 씩씩 거리며 막내 견제 하기를 심하게 한다.
내가 한 집에서 콩쥐엄마 팥쥐엄마 노릇을 동시에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늘 내게 도전하는 둘째지만 그 우람한 체격만큼이나 든든할 때도 많다.
연약한 막내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한 것이 알게 모르게 둘째 언니를 따라 다니며
겁날게 없고,어려운 것은 언니가 많이 도와 주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셋이다보니, 작은 소사회를 이루는 것을 느낀다.오손도손하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티격태격하며 마치 싸우기위해 태어나기라도 한냥 서로들 으르렁거리다가도
누구 하나 수학여행등 집을 비우면 빈자리가 느껴지는지 그새 보고싶다고 아우성이다.
가장 좋은 때는 심부름이라도 시킬 때는 짝을 지어 보내면 든든하다는 것.
그렇게 서로들 기대며 살아가게 되리라.
초등 학교때 반장...그것도 매월 뽑는 반장...은 맘만 먹으면 거의 할 수가 있다고 보지만
(그래도 다섯번 나와서 떨어진 애가 있긴 하단다.)
막내는 아이들 앞에 나가서 말 하는게 부끄러워서 못한다고 했다.
3학년부터 월반장을 뽑는데 씩씩한 둘째는 일찌감치 자기가 인기가 있어서 되었다며
해 보더니 6학년이 들어서자 이젠 안한다고 한다.머리가 큰 아이들을 다루기가 어렵다면서...
하긴...6학년쯤되면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도 베테랑(?) 선생님이 아니면 버거운 아이들도 있긴하다.
그러나 3학년 아이들은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모르는 말씀이라구요?^^)
학교가지 않겠다고 떼 쓴 적도 없이, 그렇게 약해 보여도 크게 아픈 적도 없이
1학년 입학하자마자 5월에 이곳에 전학을 왔어도 별 탈없이 적응해 준 막내가 너무 이뻐서
큰 아이들보다 유난히 사랑 표현을 많이하는 엄마이지만
요즘 막내가 잔머리가 커가지고 언니들에게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 오르는 방자함을
심하게 연출 하므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이쁜 놈 매 한대 더 주라"는 어른들 말씀 틀린것 없다는 것을
친정집에서 익히 느낀터라 내가 막내가 이쁘다고 언제까지 품 안에만 끼고 있다가는
이쁜 막내가 인간 막내되기 쉽상이라 이제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막내를 사자새끼 훈련을
시킬 필요를 느껴서 "언니들 앞에서만 까불지 말고, 친구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나서보라"고
은근히...등을 떠다미는 소리를 여름부터 읊어 대었다.
큰 아이때도 아이의 유약함이 심하게 걱정이 되어 은근히 반장이 될 기회가 있으면
떨어질 것을 두려워 말고 도전해 보라며 등을 떠다 밀었는데 아이가 소심하여
앞에 나서서 말 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마다하는 것을 극성(?) 에미가
베게를 단을 쌓아놓고 올라가서 연설을 하게 연습시켜 반장이라는 것을 시켜 보았는데
그 이후 소심한 아이가 많이 적극적이 되었고, 남 앞에서 말 하는 것도
두려움을 많이 떨친 듯하여 반장을 시킨 것을 잘하였다 생각 하였었다.
큰 아이는 한 학기 반장이었는데 그 후 학생회장이나 부회장등의 굵직한 선거에는
그릇도 않되기도 했지만 뒤를 밀어줄 것을 생각하니 내게 버거울 것 같아서 애시당초
선거에는 나가지도 말라고 한 것이...쫌...찔리는 면이 있다.잘 나가는 사람들은 거금을 쓴다하니
뱁새 황새 따라 가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일...일찌감치 피하자였지만
여건만 된다면 아이의 자신감에는 그런 역활이 큰 몫을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월반장 가지고 에미 맘이 이리 기쁜 것을 주변에서보면 영락없이 팔불출이겠지만
막내에게 있어서는 일취월장의 사건이요,앞으로 막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대인관계를 잘 하리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서 이리 동네방네 나발까지 부는 것이다.
(옛날 사진을 올리는 것은 그때까지만해도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기티가 나더니
이젠...삐쭉하니 커가면서...귀여운 강아지 새끼가 성견이 되듯...뻘쭘해지니
이쁜 사진이 별로없기에 옛날 사진을 대신하며 올린다.에궁궁...
역시 강아지나 인간이나 아기때가 젤루 이쁜걸.)
"한번 반장은 영원한 반장" 이런 구호를 들은 적이 있는것 같기도하고...
딸 넷을 낳고서야 서른 여덟에 아들 하나 점지받은 나의 친정 엄마는 그 귀한 (?) 아들에게
지극정성이셨다.넷째딸인 나는 암암리에 피해의식에,또는 막강한 경쟁자의 출현에
일찌감찌 생존경쟁을 터득하여 막내 남동생보다 더 잘하여야만 엄마의 사랑을 쟁취할거라고
생각 하였나부다.막내 남동생이 학교에 들어 가기도 전에 딸들에겐 거의 무관심(?)해 보였던 엄마가
남동생에겐 글자 공부도 시키고, 아이가 입학을 하자마자 바리바리 싸들고
소풍도 따라가고 하시더니(나는 초중고 통틀어 초등 졸업식때 한번 오셨다)
기어이 남동생을 반장까지 만드시고야 마셨다.막내 남동생은 거의 우리집의 우상처럼 떠받들려졌고
(종손집의 외아들이라) 우리는 늘 들러리였는데 난 어릴때부터 그런 여건하에서
자의식이 강했던지 남동생이 상 하나 받아오면 나도 반드시 받아와서 같은 칭찬을 받기 윈했지만
남동생이 받아오는 상은 올림픽 금메달 수준으로 환대받고,
난 그저 못하는 것보다는 괜찮다 정도의 칭찬만 받았던 것 같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지금 내가 아들에 연연치 않게 되었다.)
그렇게 공을 들인 댓가로 남동생은 유년시절 황태자로 살았고,
"한번 반장은 영원한 반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는데 그 후 우리집 가세가 기울면서
황태자 신분에서 평민으로 살아 가자니 막내 남동생은 사회생활에서 심하게 부침을 겪게 되었다.
늘 대우 받고, 필요한 것은 옆에서 다 충족시켜주던 삶에서
스스로 살아내야하는 삶을 쉽게 소화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텐데도
그렇게 공 들여 키울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한을 한편 이해가 되기는 하나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고 혹독하게 키워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 일깨워 주었다.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한 꼴도 참고, 두루두루 어울리는 사회 생활을 해내기가 만만치 않았을 터.
공채로 들어간 회사도 오래 못 다니고 자기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기 몇 번...
남동생은 인생의 쓴 맛을 성인이 되고 나서야 배우느라 혹독한 댓가를 치루었는데
애시당초 무수리로 대접 받으며 자란 우리들(딸)은 자기 몫의 인생을 알아서들 꾸려간다.
대접 받는 반장이 아니라 섬기는 반장 교육을 제대로 받았더라면 막내 남동생의 반장 이력은
더욱 빛나게 이어졌을터인데, 인간세상 새옹지마라 했던가.
내가 이런 삶의 굴곡을 부모 형제들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였기에 나의 막내딸도
맘 독하게 먹고 강하게 키워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막내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 지는지...TT TT
흐물흐물 녹아 내린다.그것이 결코 아이를 위하는 일이 아니란 것을 보았으면서도...
요즘 학생 문화원에서 "부모 교육"이라는 강좌를 듣게 되었는데
10여명의 학부모가 수강생인데 그 중 내가 제일 연장자라 삼인행에 필유아사라 했던가...
나를 반장으로 추대(?)하여 본의 아니게 감투 하나를 쓰게 되었는데(단지 연장자란 이유로)
그 감투가 묘하게 사람을 변하게 하더라는 경험이다.
아무것도 아닐 때는 책임감도 없고, 누구하나 신경 쓸게 없는데
그냥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 뽑아 준 반장조차도 감투라고 쓰니 몹시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반장이 잘 못하여 분위기가 별로 라느니 그런 소릴 들을까봐도 쓸데없이 신경이 쓰이고
강사 선생님이 명강의를 하셔도 출석율이 저조하면 뭔가 내 탓도 있나 신경이 쓰이고
만사를 제치고 출석해야하며 그것도 시간보다 일찍 가서 자리를 지키게 되고
(보통은 정시간에 맞춰서 헉헉대며 가기 일쑤인데...)
토론에도 적극 참여하게되고,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를 이끌 궁리도 해 보고...
그래서...자리가 사람을 변하게도 하고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맘이 애잔하여 응석이로만 키운 막내 예인이가 이제부터라도 반장이라는 자리를 통해
성숙한 사회인으로 거듭나 주기를 바라면서...팔불출이 엄마는 자랑삼아 이렇게 기록해 둔다.
2006.9.29.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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