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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비우고나니...

by 농부김영란 2004. 5. 19.

 

사십 고개를 넘으면서부터 서서히 옭 죄이는 감정이 있었다.

 

요즘 사회적인 분위기가 위기 의식이 팽배한 탓도 있고,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부터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하는 시점이  사십대이기도 했고

이십대에 앞으로 <내 인생을 어찌 살아갈까>하고 진지하게 했던 고민을,

이제 사십대에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재 출발해야하는

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해서였다.

변화를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이십대 때의 가벼운 몸과 맘으로 시작하던 때와는 많이 다른 여건에서

나도 모르게 변화에 둔감하고, 퇴화되어 가는 기능들이

육중한 공룡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떨치고 일어서기가 참으로 많은 생각이 앞서게 했다.

 

남편의 명퇴 시기가 서서히 다가 오는것 같아서 나름대로 마음을 서서히

다져가고 있었지만, 조금만 현실이 내게 여유를 주었으면하고

시간을 늘리고자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어디 냉엄한 현실이

내게 여유를 줄만큼 시절이 호시절이든가.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기업도 군살 빼기에 안간힘을 쓰고

기업은 이윤 창출없이는 살아 남을 수 없기에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었지만

미처 제 2의 인생을 준비할 여유를 못 차리거나,

또는 현실의 위기를 극복치 못하거나 직시하지 못할 경우는

무방비 상태로 내 몰려서 죄초하기 일쑤이라

내 고민은 생존의 문제로 매우 예민해져 가고 있었다.

 

연초부터 나는 그 문제가 좀더 내 가까이 다가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결혼도 늦고, 아이들도 어리고 셋이나 되는데다가

그동안 육아에만 전념하느라 나도 모르게 사회로부터 많이 유리된

내 의식을 다시 긴장 시키고 새 출발 해야 한다면.....

그런 물음이 내 안에서 쉼없이 솟아 오르고 있었지만

이십대에 내가 가볍게 날아 오를 수 있었던 때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

쇠약해진 건강,둔해진 감각,무엇보다도 엄마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어린 아이들.

남편이 실직을 했을 경우에 올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책을 생각 해 보느라 늘 머리가 묵직 했었다.

 

♣♣♣♣♣♣♣♣

 

돌아보니...크게 내 인생을 구간을 정한다면

삶의 이정표를 세웠던 이십대,나름대로 진지하고 치열한 고민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현실적이기보다 꿈때문에 아파하고, 스스로를 내 몰았던 것 같고...

삼십대는 늦은 결혼으로하여 마음이 급하여서

쉴 사이없이 또한 내 달렸던 것 같다.

세 아이를 재왕 절개로 낳고, 작은 전세방에서 출발하여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기까지 이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했던 것 같고,

집들이는 대략 2-30번쯤  치룬 것 같고,

잠시도 편히 숨 돌릴 겨를없이  달려 온 것 같은데...

이제 사십대...그 중반으로 치닫는 시점.

지금쯤 한 고개를 올라서서 여유를 차릴 때 쯤일거라 계획 했었지.

인생이 계획대로 된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마는 이렇게 변화무쌍한 시대에 살게 된 내가 나도 모르게 퇴화되어 가는 공룡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이십대, 삼십대...내 팔팔하던 시절.후줄근한 모습의 중년의 모습이

참으로 못나 보이고, 연민을 금할 수 없었는데...

이제 그 나이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시절이 나를 백의 종군 하라 한다.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다시 한번 용감하게 스스로의 능력을 보이고, 헤쳐 가라 한다.

그런 절실한 물음을 앞에 두고 난...내게 묻고 또 물었다.

이제...비상을 준비해야만 한다.살찐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최대한 날렵하게 만든 다음 다시 한번 있는 힘을 다해 날아 보아야만 한다.

그런 자문 자답을 하면서 봄날을 보내고 있는 사이...

제주도 행이 결정되고...난...이미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리고 있었기에

주저없이 이곳 제주도로 떠나왔다.

팔자 좋은 여행도 아니고,춘 삼월 호 시절 별장처럼 생각할 겨를도 결코 아닌 상황.

난 비장의 카드를 선택 했다.

 

이것은 내 인생의 보너스 기간이다.

단 한순간도 여유롭게 지내지 못하고 헉헉대고 살아왔던 내게

다시 한번 비상하기위해 몸과 마음을 다질 수 있는 기간을 준거라고...

 

이번에 이삿짐을 꾸릴 때는 버릴 수 있을만큼 버리기...그것이 내 최대의 과제였다.

그간 버리지 못하고 늘 싸안고 다니던 물건들.

아가씨 시절부터 아끼던 장식장과 그 안의 소품들도...미련을 버리고

갖겠다 원하는 이에게 성큼 주었다.이웃들로부터 모아 들인 넘치는 옷가지들도

한 계절에 두 세벌만 빼고는 골라내어 버렸다.

(그래도 아직도 아까와 못 버린 것도 있다.)

부엌 살림도 우리 가족이 필요한 것만 챙겨 왔다.

손님이 오시면 일회용으로 대처하기로 하고...

그렇게 줄이느라 애를 썼어도 이삿짐을 풀려고 보니

또 절반은 버려도 될 듯하다.^^

 

 

 

언제나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상태,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비우고 새 출발할 수 있는 마음 가짐,

 

어느 장소에서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의식 구조.

 

 

 

이제 내게는 그러한 것들이 절실히 필요한 것임을 느낀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십대의 모습은 안정된 사십대가 아니라

새 출발에 진취적인, 젊고 패기있는 사십대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그동안 살아옴이 헛됨이 아님을, 그동안 쌓은 지식과 노력이 무용지물이 아님을,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하는 사십대.

 

마음을 비우고,부정적인 생각들을 곁 가지를 치고나니

내 마음이 한결 가볍고, 모든 상황이 수월하게 느껴 지려고 한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이 곳 제주도에서의 생활이 얼마만큼의 기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 기간을 내 인생의 축제의 기간 쯤으로 장식 하기로 하였다.

그간 한번도 여유롭지 못했던 나날들이었다면

이 폭풍 전야같은 기간을 난 오히려 최대의 여유로 받아 들이기로 했다.

결전의 날을 앞두고 비축 해야할 에너지를 생성 시키는 기간.

앞으로 적어도 이십년은 내가 사회 활동을 통해 생산적인 역활을 담당해야 하기에

그만큼의 세월을 지침없이 날아 오를 수 있는 힘을 준비 할 기간으로...

 

그간 살아 오면서 길지는 않지만...

아주 막연 하거나, 힘이 부칠 때는 오히려 난...안으로 침잠해야만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야 했을 때

담판을 지어야 할 대상은 바로 내 안의 나 자신임을 알고 있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 주지 못하기에 내 안의 나와 겨루어서

내 의지를 세워야만 다시 뛸 수가 있었다.

 

내 건강이 아주 나쁠 때,내 자신이 한없이 우울해 지려 할 때,

지쳐서 쓰러지고 싶을 때,남들이 바라보는 나보다 더 내가 약하다는 것을 느낄 때...

스스로에게 힘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조용히 침묵하여서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힘을 만들어야만

나는 그 상황을 이겨 낼 수가 있었다.

 

안으로부터의 힘이 팽창해 오르면

다시 한번 내 인생에 도전장을 던져 볼 생각이다.

또 하나의 짐을 어깨에 얹어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내 힘을 비축 하고서...

 

그동안의 기득권은 모두 버리고

새로운 출발선을 정할 것이다.

내가 한없이 그리던 자연으로 내 안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버리고

그리고 다시 한번 내 삶을 내 의지로 곧추 세워 보리라.

 

버리고 비우고나니, 다시 찾아오는 희망.

그 희망의 새 싹을 소중히 키워 보려 요즘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덧 내 마흔 넷의 봄이 스산히 가고 있고,

초 여름의 싱그러운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2004.5.19.英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