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아서 다행이다■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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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11 15:37:30
무소의 뿔처럼 홀로가도 외롭지 않을 나이가 돼서 감사하다..." 법정스님 입적 12주기가 다가오자 스님이 두고 가신 주옥같은 말씀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요즘같이 세상사가 어수선할 때 중심을 잡기 위해서 다시 법정스님의 책과 말씀들을 되짚어 본다. 한때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말씀들로 내 삶을 다독인 경험들을 떠올리며, 다시 스님의 말씀들을 되새겨 들어보고 있다. 홀로서기하며 자신을 담금질 할 때, 법정스님의 말씀들은 흔들리는 나를 곧추서게 해줬다. 법정스님의 책 중 <무소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는 의미인데 요즘 곱씹어 본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의식주에 덧붙여진 장식들. 한 평 방이면 숙면을 취할 수도 있을 텐데 고래등같이 지은 집. 몸과 정신을 지탱해 줄 소박한 찬이면 족할 밥상이 기름진 산해진미로 넘치게 차린 상. 몸을 보호하고 보온해 줄 옷이면 족한데, 명품이라는 브랜드로 휘감아야 품위를 유지하는 듯 치장을 하는 것. 그렇게 세상은 보여지는 데 치중해 발전해 왔다. 삶에 대한 깊은 사색 없이, 남들이 가진 만큼 나도 갖고 싶어 했고, 남들 입은 옷들을 살폈으며, 남들이 어찌 사는지 시선은 늘 바깥으로 향했고, 남들보다 못한지 늘 염두에 두고 산 건 아닐까? 내 삶 전반에 어느 정도 탐심을 자제하고 절제하며 살았다 해도, 오십보백보로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산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독립적인 존재로 살게 된 것에 만족하게 된 지금, 돌아보니 열심히는 살았어도 잘 산 것 같지는 않다. 지혜와 덕이 많이 부족해 여유가 없었다. 12월보다 더 추운 2월에 바깥일을 하고 싶어서 뜰을 서성이며 봄볕을 손꼽아 기다렸다. 겨울동안 뼈 속까지 스민 노독을 풀어내려면, 속도를 최대한 느리게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날이 추워서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지난주부터 봄기운이 가득해 한낮에 더울 정도로 기운이 올라가자, 나는 어수선한 뜰부터 매만지기 시작했다. 몇 겹의 옷을 껴입고, 핫팩을 붙이고, 비닐방석을 깔고 철푸덕 주저앉아서 흙을 파고 풀을 메니 어찌나 좋은지... 무릎관절이 안 좋아서 아예 두 다리를 뻗고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일을 하는데, 나는 이것보다 더 좋은 놀이가 없으니 한편 다행이다. 이제 남들 의식하지 않고, 내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서인지, 햇살보약을 마시면서 바람과 속삭이고, 새소리 들으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게 돼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세상사 어수선하기 그지없지만,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살게 돼 다행이다. 남편농부도 이미 귤나무에 영양제도 두 번 주고, 봄퇴비도 뿌리고, 봄농사에 들어갔다. 쉬는 날 더 몸이 무겁고, 일할 때가 더 좋다는 남편도 이제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일이 몸에 배서 다행이다. 죽는 날까지 일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삶의 본질에 충실할 나이가 돼서 다행이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무소의 뿔처럼 홀로가도 외롭지 않을 나이가 돼서 감사하다. 오늘, 나는 농부의 삶에 만족한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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