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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승수씨 이야기

by 농부김영란 2004. 1. 17.


몇년 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승수씨가 얼마전에 사법 고시 2차를 통과하여
3차 면접까지 치렀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IQ 113,내신 5등급의 평범한 젊은 이가 가스통 배달원,
물수건 배달,포크레인 조수,택시 기사,공사장 막 노동꾼을 거쳐
고교 졸업 6년만에 서울대 법대 수석이라는 영예를 안았다고

온 매스컴이 대서 특필하며 그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하는

책까지 펴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초등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 어머니의 말할수 없는 고생 아래서
그리 빛나지도 못한, 오히려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싸움 잘하던

문제 고등 학생이었던 그가 그런 소식을 전하게 된것은 요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입시 관문을 겪어 보거나
주변에서 지켜 본 이라면 기상 천외한 특종이 아닐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입학도 아닌 수석 입학이라니...
나도 처음에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너무나 가슴이 뛰었었지요.
인생에서 저런 일도 있구나.기적이란 일어 날수도 있는 일이구나...
결코 그에겐 우연히 주어진 기적이 아닐진데 기적처럼 들리던 그 이야기...
너무나 고달픈 삶을 살아온 그가...그 환경에 짓 눌리지 않고 박차고 일어나
한계를 극복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찡한 감동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나에게도 그의 이야기는 신선한 전율이었습니다.
나도 본의 아니게 고등 학교 이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대학 진학 문제로 많은 시행 착오와 고통을 겪었던 터라
나보다 훨씬 더 처절하고 더 극기적인 상황을 극복한 그의 보이지 않는 고뇌가
전달되어 오는듯해서 폐부 깊숙히에서 싸아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얼마나...힘들었을까...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바닥의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좌절감에 얼마나 상처 받았을까...
나의 지난하게 아프게 걸어왔던 20대가 상기되면서
그의 이야기가 마치 나의 성공이라도 되는 듯 기뻤습니다.


그런 그가 다시 몇년후에 신문의 작은 지면을 장식한 것을 보았습니다.
사법 고시도 통과하고, 그동안 그는 권투도 수준급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의 보이는 면만을 본다면 이제 그는 탄탄 대로 성공한 것이 틀림 없겠지요.
학벌 위주, 권력 중시의 이 사회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그가 또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 낼지는 추측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해진 성공 가도를 달려서 어느 시기쯤 부와 명예를 짊어지고
이제 더이상 신선함은 잃은채 달콤한 안락에 빠져 든 중후한 사회 인사가 되어
나타 날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이 다음번의 만남도
내게 또 다른 희망을 안고 나타나기만을 바래면서
지금까지 만으로도 그가 보여준 신선한 희망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의 이야기는 결코 평범한 상황이 아니지만 인간이 굳게 마음 먹는다면
못 이룰 일도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이야기라서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요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을 일입니다.
중년이라는 이름으로 느슨해지고 나약해져만 가는 나도,
그의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해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아이들도 훗날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꿈을 포기않고 끝까지 도전한다면
결국 이룬다는 것을 그를 통해서 배웠으면 하는 바램으로

장승수씨를 희망의 표본으로 올려 봅니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장승수 지음
...가슴에 와 닿은 귀절을 발췌했습니다.


골프장에서 일을 하고 있노라면 단원 김 홍도의 그림이 어른 거리곤 했다.
그림속의 인물들은 장단지까지 주섬주섬 걷어올린 흙물이 든 무명 고의와
가슴팍을 다 드러낸 헐렁한 적삼을 입은채 힘겨운 노동을 하고 있다.
골프장에서 내가 한 일도 중장비 없이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고
목도로 무거운 것을 옮기고 하는 막노동이었으니

피차 비슷한 일을 했다고 할수 있다.
이렇게 막노동을 하는 나도 그 시대로 치자면 노비 신세를 면치 못했을텐데,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게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엄연히 양반과 노비의 구분이

존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그 이름이 부자와 가난한 자로 바뀐채 말이다.

부유하다거나 가난하다는 것, 또는 공부를 많이 했다거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삶의 모습에 편차가 생긴다는 것을 과연
그 사람의 후천적인 노력으로만 환원시켜서 설명하고 정당화 시킬수가 있을까.
그럴수 없다고 생각한다.
...............
보다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경우의 수"들이
오늘날 서로 다른 삶의 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원점으로만 회귀되는 삶을

그의 어머니로부터 보아 왔었습니다.
노력으로 치면 누구못지 않게 노력해도 운이 따라 주지 않아
늘 생활이 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그에게는 이런 의식이 자리 한 것 같았습니다.
나의 경험으로도 어느 정도는 긍정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외도로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진 우리집 사정도
아주 오랫동안 계속 꼬이기만 했었습니다. 그곳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던 나도
결국은 현실과의 타협의 방편으로 요리사가 되어 경제적인 곤궁부터

해결해 보자고 꿈을 선회 했었던 아픈 기억이 떠오릅니다.
누가 가난이 불편하다고만 말했는지요.그것은 처절한 절규일 수 있습니다.
지독히 절망적인 상황하에서는 꿈도, 자존심도...인간의 존엄성 조차도
한낱 이론에 불과한 소리들이지요.
그렇게 가난의 굴레는 혹독하고...그래서 벗어 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지쳐서 추락한 이는 얼마나 많습니까.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지금 사회 곳곳에서 가족 동반 자살 등등...엄청난 부와 빈의 풍속도가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 존재의 가치는 커녕 이 땅에 태어난 것이 한이 되어

자신의 목숨을 내 던지는 사회 현상이,
그 안에서의 절규가 시린 오늘의 현실입니다.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그 어떤 고통도 극복하고 성취할수 있다."
장 승수씨가 보여준 인간 승리의 무언의 언어가 오늘 더욱 빛나는 까닭은
오늘의 사회 현실이 더욱 어둡기 때문이겠지요.


70대 노인이 되어서도 청년처럼 살리라하던 그 소망처럼

내게 다시 신선함을 불러 일으키고 희망을 보여준 장 승수씨,

그 청년에게 손을 높이 흔들어 그의 앞날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2004.1.9
. 세자매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