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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을 오르다.

by 농부김영란 2004. 1. 17.





    결혼전 나의 취미는 등산이었습니다.바쁜 생활이었으나 사내 등산부에 들어서
    전국의 명산들을 한달에 한두번은 올라서 땀을 흘리고 돌아오면
    나머지 일상들을 지침없이 열정적으로 보낼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니스카트 한번 못 입어본 내 코끼리 다리는 등산때는 근육의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산이 거기 있기에 내가 올랐지만 언제나 산은 내게 무언의 언어로 삶의 활력소와 가르킴을 주었습니다.
    그 어떤 산도 아름답지 않은 산이 없었고,그 어떤 산도 영혼을 품지 않은 산이 없었습니다.
    사계가 뚜렷한 우리 나라의 산들은 어느 한계절도 소홀함없이
    아름다움과 웅장함과,청명함과 경외심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수없이 혼탁한 공기를 마시며 도회에서 살지라도
    폐부 깊숙히 오염된 공기에 쩔어 있어있는 나를 산은 신선한 공기로 채워 주었습니다.
    젊은 패기로 올랐던 산은 조용한 산보와는 거리가 멀었고
    땀내를 진하게 흘리며 정복하는 성취감에 더욱 들떴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산행을 내 결혼 생활과 더불어 그동안 접어 두어야 했습니다.
    남자에게도 물론 결혼은 인생의 분수령이지만, 여자에게는 특히나 엄마의 몫이 고스란히 주어져 있기에
    옴짝 달싹도 할수없는 극기의 세월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결혼 전 세 아이의 엄마가 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나였는데
    한 아이, 두 아이 낳으면서 점점 내 안의 모성이 눈을 뜨는지 아이가 점점 이뻐지고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된것이 한편 키우는 걱정이 앞서지만
    세 아이들과의 정신이 없는 나날들이 마치 내게 적절한 운명처럼 받아 들여집니다.


    한때는 몹시도 이런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안달을 부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유난히 자의식이 강해서 몰개성하게 느껴지던 "현모양처"라는 말이
    이제는 평범하지만 따뜻한 진리로 들려지고, 그 어떤 빛나는 개성보다도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요소라고 깨닫습니다.


    엄마로서 충실해 지는 것, 아내로서 본분을 다하는 것,가정의 화목과 사랑이
    여성의 헌신과 희생에서 발아되고,성장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역사가 진보해온 배경이 되어 왔던 것이라고 느끼면서...


    엄마의 희생을 안타까운 여성의 삶이라고 여겨지던 것이,
    이제는 기꺼이 그 희생위에 자녀가 성장하고,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재 충전을 하며
    더욱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낼수 있는 원동력이라면 여성의 삶이 가치없다 할수 없다고 느낍니다.


    여성은 엄마로 다시 거듭나는 것 같습니다.
    내 아이들 또한 엄마가 될 사람들이라 나의 이런 깨달음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 여깁니다.
    나의 어머니의 헌신적인 희생이 새삼 깊은 사랑으로 다가오면서
    산또한 내 영혼의 어머니 역활을 해 준것을 새삼 떠올려 봅니다.


    산은 땀 흘리는 상쾌함을 깨닫게 해 주었고,수고로움 후에 맛보는 정상에서의 쾌감을느끼게 해 주었고,
    하산 길에서조차도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지요.
    헉헉대며 오직 정상 정복만을 위해서 오른다면 결국 반환점에서는 돌아서 내려 올수밖에 없기에
    산은 조금 천천히 걸어 보라고도 일러 주지요.


    산에서 피는 온갖 꽃들이, 내 거친 숨을 고르며 걸으라 손짓하지요.
    살아가면서 요소 요소에서 피어있는 작은 이름모를 꽃같은 기쁨과 행복을
    맘껏 즐기며 살라고 산은 말없이 가르켜 주지요.주변을 돌아보며 자낙자낙히 걸으면서
    노래도 부르면서,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여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깨달으라 일러주지요.


    산은 인생과도 비유합니다.
    올라 갔다가 내려오면 원점이지만, 그 산행에서 무엇을 얻고 돌아왔는지는 개인의 느낌의 차이이지요.
    우리가 인생길에서 누구나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산은 가르켜 줍니다.
    내 인생의 산보길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채웠는지는 오직 나만의 몫이겠지요.


    이제 내 아이들과 삶을 느끼고, 가르치기 위해서,산행을 하고 싶습니다.
    즐겁게 산을 올라서, 산의 기상을 품고 내려와, 삶도 그렇게 살아가라 일러 주고 싶습니다.
    허둥대지도 말고 찬찬히, 산을 산답게 채우고 있는 요소들을 음미하면서
    미끄러지고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서면서,산은 언제나 겸허하게 올라야 한다는 것을느끼게 해 주렵니다.
    가슴 가득히 넘치는 희열을 담고,환희의 송가를 부르면서 그렇게 산행을 하라고 일러 주고 싶습니다.
    그렇듯 인생길도 걸어가라 조용히 손짓해 주고 싶습니다.


    봄의 환희를 위해서 시린 나목이 되어서 조용히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겨울산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고 돌아와
    내 삶을 오랫만에 여유있게 돌아본 날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겨울산...그대에게도 권하고 싶은 선물입니다.
    2004.1.2 세자매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