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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동행, 말의 온도

by 농부김영란 2021. 8. 29.

 

 

 

라이프 동행■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35)
농촌여성신문  |  webmaster@rwn.co.kr
  승인 2021.08.27  10:13:25
   

"충전을 하고 다시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나가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으로 
늘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청귤(풋귤)철이 돼서 남편과 ‘따로 또 같이’의 시간이 됐다.
평소에는 각자 할 일을 하다가 동업을 해야 할 때 뭉치는 것이다.
부부는 경제공동체이면서 운명공동체이기도 해서 서로가 주는 파장이 크다.
더구나 24시간을 함께 일하고 생활해야 하는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숨소리에도 반응하게 된다.
평소에는 각자 떨어져서 자신이 할 일을 하고 꼭 필요할 때는 함께 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청귤(풋귤)을 택배로 보내는데, 내가 착각해서 운송장 하나가 남았더니
혀를 차면서 비아냥대는 남편 말투에 휴전 중이었던 관계에 순식간에 전운이 깔렸다.
“착해진 줄 알았더니 본색이 드러나는군!”하며 내 심사가 꼬였다.
함께 하다보면 감정이 변덕스런 날씨만큼이나 요동치기도 하는데,
넘어서는 안 되는 선까지 아슬아슬 줄타기를 해왔다.
그래도 언제나 지켜야 하는 선, 38선! 서로 이 선은 넘지 맙시다.

‘남편 가까이에서 일하지 않는 게 내가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따로 또 같이’의 원칙을 만들었다.
퇴직 후 늘 함께 하다가 보니 남편이 나를 부하직원이나 몸종처럼 여기는 듯해서,
남편은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지만 나는 숨이 막혀서 견딜 수 없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돌아오는 것도 버겁다고. 주말부부가 최고라는 마당에,
24시간을 함께 하는 운명공동체가 한쪽은 대장, 한쪽은 꼬붕 내지는 시다바리의 신세가 된다면
이 불공평한 관계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기분이 나빠서 꼬붕, 시다바리라는 일본 비속어를 씀)

남편이 퇴직 후 귀농해 함께 하면서 처음 2~3년간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녔다.
먼저 귀농한 내가 남편을 조언하고 인도하는 과정이기도 했는데,
착하게 잘 배우는 학생의 자세가 아니라,
못된 상사의 명령조의 말투로 나를 울화통이 치밀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만만한 마누라의 대장노릇을 하겠다는 건가?’ 하며 내 안에서는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목소리 크게 하면 내가 주눅 들어서 깨갱하고 납작 엎드릴 줄 아는지,
귀청이 떨어져 나가게 큰소리로 말하는 것은 무슨 허세란 말인가?
눈을 위아래로 굴리며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하면 심장 여린 토끼가 자진해서 굴복할 줄 아는지?
(동물의 왕국에서나 볼 법한 정글의 질서를 독립투사의 후예인 나에게 적용하려고 한다만...)

부글부글... 내 안에서는 사리가 아니라 용암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47세에 명퇴당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의 동행은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다행이 무난한 동업자가 돼가고 있다.

지인이 식당을 하는데 부부가 둘이서 경영을 하다 보니 작은 공간 안에서 수시로 티격태격하게 된단다.
절호의 찬스를 활용해서 3일간의 휴가를 만든 지인.
3일간의 별거를 남편에게 고하고, 분위기 있는 곳에 둥지를 틀고 나를 불렀다. 

집을 떠나고, 남편으로부터 떠난 것 자체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단다.
장바구니에 책도, 그림도구도, 기타까지 마구 넣고서는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에 푹 파묻히고 싶어서 집을 나왔다고.
“필요한 시간이고 말고~”  

그녀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면서,
충전을 하고 다시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나가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으로 늘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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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말의 온도■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34)
농촌여성신문  |  webmaster@rwn.co.kr
  승인 2021.08.20  13:45:59

 


"말의 불순물을 거르는
체를 옆구리에 하나씩
장착하면 좋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옛날에 천 냥이었으면 지금 돈으로 1억 원이 넘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말로서 이만큼 효과를 본 적이 있었나... 곰곰 생각해봐도 말 잘못해서 후회한 적은 많았어도
말을 잘해서 빚을 갚은 기억은 도무지 떠오르지를 않는다.

말로서 죄를 지은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주로 뒷담화를 하거나
나를 서운케 한 사람들을 말로라도 뒤에서 분풀이 한 것들이 대부분이니,
내가 공인이었다면 가벼운 입 때문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주로 말을 많이 하고, 입이 가벼운 편에 속해서,
과묵해지는 것이 희망사항이나 거의 지키지를 못했다.
반짝반짝 재치 있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현란한 말과 글을 구사하려고 애쓴 날도 있었으나,
나이를 들어가면서 말 많은 사람보다는 말 없는 사람이 더 신뢰가 간다.
말을 하기는 쉽고, 말을 참기는 어려운 것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침묵은 금’ ‘남아일언 중천금’ 등 과묵한 것을 강조하는 속담을 미덕으로 듣고 자랐지만,
요즘처럼 자기표현이 자유로운 시대에는 고리타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말들이다.
따뜻한 말은 많을수록 좋고, 쓰레기 같은 말은 하지 않을수록 좋다.

내가 최근에 말에 대해서 곰곰이 되새기게 된 것은
제주도에서 친환경농사를 짓는 사람들 모임 밴드에서 느낀 점 때문이다.
나이 덕에 남편이 회장을 했었는데, 너무 열심히 해서 내가 소매 끈을 잡아당기기 일쑤였다.
희생과 봉사의 개념인 회장 자리라 남들이 기피했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자리인지라 맡게 됐는데,
아내 말은 잘 안 듣는 남편이 남의 말은 잘 듣는지라
이 역할을 한 번 하고나니 사회화가 많이 돼서 회장직을 내려놓고 나서는 나도 좋은 평가를 하게 됐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공부와 연구를 하는 자생 단체이고,
온라인 밴드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올리며 공부와 친목을 도모하는데
가끔씩 말표현이 딱딱해서 불협화음이 생길 때가 있었다.
건설적인 토론까지는 좋은데, 말꼬리가 꼬이면서 감정싸움까지 비화한 적도 보았기에
갈등의 소지가 될 것 같은 말은 서로 하지 말자고 정했다.

얼마 전에 남편이 공적이기도 하고 사적이기도 한, 글 하나를 올렸는데 강직한 충고의 답글이 올라왔다.
남편은 자신에게 반하는 글에 기분이 나쁘다고 나에게 하소연을 하기에
제3자인 내가 보기에는 “맞는 말이지만 표현이 직설적이고 딱딱해 당신이 기분이 좀 나쁘겠다.”고
위로(^^) 하며 남편을 달랬다.

“기분은 안 좋은데 맞는 말이라면 뼈아픈 충고를 되새기는 게 현명하다”고...
나도 제3자니까 성인군자 같은 조언을 했지만, 답글 단 사람의 화법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남편 마음에 돋은 가시를 빼주면서 나는 말의 중요함을 되새겼다.
말의 온도가 1도만 차이나도 어감이 달라지기에 같은 말도 상처주지 않고 잘 말하는 화법을 서로 다듬어야겠다.

사람 사는 세상, 적절히 향기로운 말을 잘 써서 말로서 행복하면 좋은데,
그 쉬운 말이 비수가 되는 일이 허다하니 말의 불순물을 거르는 체를 옆구리에 하나씩 장착하면 좋겠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말하기를 나도 이제부터라도 연습해
예쁜 꽃 같은 말을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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