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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알뜰과 궁상 사이

by 농부김영란 2021. 3. 10.

알뜰과 궁상 사이■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 ⑭

농촌여성신문  |  webmaster@rwn.co.kr

 

 

알뜰이 궁상이 된 습관을
떨쳐버리는 게 올 한해
나의 최대 목표다... 



물려받은 재산이나 기댈 언덕이 없는 사람이 자산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알뜰하게 소비하고,
최대한 긴축재정으로 저축을 하는 게 기본일 것이다.
사업가가 돼서는 안 될 사람인 아부지가 사업을 하신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사업에 실패해 겪어야 하는 인생 부침을 간접체험 했다.
엄마의 그늘아래였기에, 엄마의 투혼으로 온 힘으로 바람을 막아주신 덕분에,
세상물정 모르는 우리들은 ‘엄마가 고생하시는구나~’ 정도로만 세상을 인식했었다.

아부지의 사업실패와 좌절로 우리 가족들은 각개전투하면서 삶을 몸으로 터득하게 됐다.
반골기질이 강했던 내가 아부지의 몽상가적인 경제관념이 싫어서
머리와 말로 하는 일보다는 온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 보다 진정하다는 식의 아집을 갖게 된 것 같다.
요리사를 거쳐서 농부의 직업을 살게 된 배경이 내 안에 몸으로 일하는 직업에 대한 신념으로 작용한 때문이다.
내 무의식중에는 몸으로 땀 흘려 일해 번 돈으로 알뜰하게 살겠다는 생각이 투철해진 것 같다.

알뜰함, 검소함, 절약... 경제의 기초 단위를 구성하는 요소라
다소 늦은 나이에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시작부터 ‘졸라맨’(허리띠 졸라맨다는)으로 시작했다.
남들이 쓰다 싫증난 가전제품을 물려받아서 쓰고,
아이들 옷, 신발, 학용품은 전국방방곡곡에 사는 지인들 것으로 물려받았다.
세 아이들을 두고 직장생활을 해 벌기보다는 가정경제를 알뜰하게 사는 게 더 실속 있겠다는 생각에 자발적 주부가 됐다.

남편 혼자서 번 돈으로 가정경제를 꾸려 나가야 하니까.

온갖 알뜰 묘수를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동시대를 살아온 주부들은 거의 이렇게 살아서,
월급을 쪼개 생계를 유지하고도 저축해 집 장만도 했을 것이다.
길 가다가 누가 버린 쓸만한 물건이 보이면 반드시 필요하지 않아도 주워온다.
심지어 30년 전 마련한 맞지 않은 정장도 버리지 못한다. ‘살 빼서 입어야지’ 그러면서...

이런 알뜰이 나의 미덕이며 가정경제를 구축한 튼튼한 반석이라고 믿었는데,
이제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악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을 돌아보니 안식처인 집이 쓸데없는 물건들로 가득차서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음식을 버리지 못해서 음식물처리기가 돼 덕지덕지 붙게 된 살,
몇 년 동안 쓰지 않고 쌓여있는 짐들이며...
과감하게 다 버리고 가볍게 살자고 외친 지가 몇 년째인데,
평생 함께한 습관이 고쳐지지가 않 는다.  올해는 무조건 절반 이상 버린다고 외치고 외쳤다.

며칠 전 지인이 ‘아는 분이 육지로 이사 가는데 항아리들을 버리고 간다’고 나에게 속삭이는 전화를 했다.
맹세는 어디 가고 다음날 아침 날아가서 항아리와 두고 가는 물건 중에서 쓸 만한 물건들을 쓸어 담았다.
소라껍질, 돌까지 업어 왔다.

재산이 늘어난 듯, 흐뭇하게 항아리들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나의 고질병이 된 이 수집벽을 깨달았다.
미덕이었는데 이제는 악덕이 된, 이 불치병을 어이할꼬!
가볍게 살고, 여백을 갖는 삶을 살고 싶은데...

알뜰이 궁상이 된 나의 습관을 떨쳐버리는 게 올 한해 나의 최대 목표다.
신선한 주스 한 잔 마시고 나를 청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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