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부부 열전(Ⅱ)■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⑫ 농촌여성신문 | webmaster@rwn.co.kr |
"부부가 마음만 잘 맞으면
어떤 어려움도 넘을 수 있어
부부화합은 귀농 제1조건"
‘삼식씨’라고 불리게 된 남편은 1960년도 태생으로 대한민국 발전의 주역이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전쟁 후 폐허의 나라에 초석을 다졌고,
우리 세대는 새벽별 보기 운동을 하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수출로 이 나라를 이만큼 부강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 역동적인 힘과 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는데,
이 역사의 변화를 고스란히 몸으로 맞고 개척해 온 세대가 우리들이었다.
그런 우리들이 ‘사오정(사십오세 정년퇴직)’이라는 웃픈 현실에 직면했어도,
다시 농부로 거듭나서 꿋꿋이 헤쳐 올 수 있었던 힘, 그것을 ‘대한민국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45세 정년퇴직(사오정) 주체가 됐을 때는 당황하고 아득했지만 이제 돌아서 생각해보니
그때 등 떠민 회사가 오히려 다행이었다.
회사로서는 남편이 더 이상 함께 가기 힘든 경쟁력 잃은 무거운 존재였지만,
남편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정점에 있는 에너지가 다시 새출발을 도모할 힘이 있는 시기였기에
가시밭길을 헤쳐 나올 수가 있었다.
남편을 ‘삼식이’라고 부르는 발칙한 아내인 내가 명퇴 당해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너무나 무기력해 얼결에 바톤을 넘겨받았다.
세 아이 키우느라고 전업주부였고,경력 단절된 준비 안 된 내가
후반전 주자가 돼 달려야 했을 때 황당하고 분하고 막막했다.
나의 운명의 수호신에게 마구 삿대질을 하고 싶었다.
내 어깨에 세 아이의 운명이 달렸으니 내 엄마처럼 나도 떨치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회사조직의 부품이 돼 일했던 남편은 한동안 현실 파악을 못하고 삼시세끼 맛있는 밥상을 즐기는 자세를 취했다.
하루 종일 밭일을 하고 돌아와서 녹초가 돼있는 내게 삼식씨의 그러한 자세는 불편부당하게 느껴졌다.
남편의 머릿속에 아버지라는 동상은 가정에서 제왕적인 존재, 절대지존의 위치였기에
자신도 그런 존재로서 대우 받기를 바라는 19세기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을 남녀평등하게 하게 된 세상에서 남편이 제왕적 사고로 군림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세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내 몫, 가정경제를 이끌어 가야하는 것도
얼결에 내 몫, 집안일의 소소한 많은 것들도 내 몫...
위기가 닥쳐오자 삶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무작정 레이스를 달리기 시작한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 삼식씨는 모든 기득권을 여전히 누리고 있었다.
온 몸으로 천체를 떠받들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내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불공평해
남편과의 타협이나 협상을 요구했지만,
남편은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라 나는 독재에 항거하는 열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애민하지 않는 독재자는 오래 갈 수 없다며 깃발을 들었다.
가정의 큰 틀이 깨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편과의 불공평을 공평하게 만드는 일 또한 귀농의 어려움 못지않은 내전이었다.
마음만 서로 잘 맞는다면 사실 그 어떤 어려움도 함께 넘을 수 있기에 부부화합은 귀농의 제1조건이라고 생각된다.
불공평을 바로잡고 이제야 긴 내전을 종식하고 각자의 역할을 하며 어느 정도 조화로운 귀농부부가 됐다.
‘삼식씨’를 ‘일식씨’로 바꾼 것이다.
싸움은 깨지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잘 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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