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쿵~하고 마음이 바닥에 떨어졌다. 유리병이 조각나듯 알알이 흩어져 마음이 어찌 할 바를 몰랐다. 풍경이 이토록 아름다운데...왜 가을을 타는 걸까? 이 나이에? 연배의 지인에게 그 말을 했더니 아직도 감정이 살아 있어서 부럽다고 한다. 이 쓸쓸하고, 아프고, 어지럽고, 몽롱한 감정은 싫은데...
태풍 바람이 휘몰아 칠 때도 마음 굳게 동여매고 강철 인형처럼 살아냈는데, 날씨 화창하고, 풍요로운 이 가을에 왜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까? 계절과 내 삶의 주기가 비슷해서? 긴장이 풀려서? 머지않아 겨울이 오기에 더 화사하게 꽃 피우는 가을꽃들이 애잔해서?
농촌의 가을 풍경은 1년 중 가장 풍요하고 아름답다. 풍년이 든 해는 결실하는 계절이어서 바쁘기도 하고, 풍성하고 아름답다. 봄 여름 땀 흘린 보람을 가을에 다 느낀다.
올 가을은? 풍년? 흉년? 아마도 전체적으로는 많은 농가가 흉년일 것 같다. 기상이 안 좋았고, 그 모든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그 중에는 풍년의 기쁨을 만끽하는 농부도 있겠지만 지난여름 태풍 비바람에 홍수를 겪고 농작물이 다 떠내려간 농부들의 가을은 겨울 양식을 준비 못한 다람쥐처럼 마음이 바쁘고 애가 타겠지. 그들에겐 춥고 긴 겨울이 되겠구나...
나의 가을은 이제 언제나 비슷해졌다. 농부 초년시절에는 모든 상황에 일희일비 했다. 잘된 해는 내 공. 잘 안된 해는 하늘 탓, 정책 탓. 날씨 탓. 그러니 감정이 널뛰기해 수시로 마음이 스산해지곤 했다. 모든 것을 수확과 수입에 초점을 맞춘 탓이었다.
이런 저런 일을 다 겪어내며 세월의 내공이 쌓여 갈수록 나는 내 식으로 계산하는 법을 터득했다. 풍년이 든 해는 풍년이 들어서 더욱 좋았고, 흉년이 든 해는 허리띠 졸라매고 내핍해 사는 법을 터득했다. 태풍 쓰나미에 사람들이 다 떠내려가고, 전 재산이 사라지는 재해광경을 방송으로 본 후로는 웬만한 시련에는 “이만하기 다행이야~” 하는 초긍정의 마인드가 생겨났다.
콩 한쪽을 쪼개서 나눠먹고 살아낸 우리 부모님들을 떠올리며 내 삶의 풍요는 늘 감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다이어트가 대세인 세상이 됐으니 물질의 풍요는 어느 정도 달성했는데... 그런데 마음이 왜 바닥에 떨어진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코로나19가 불안공포증까지 유발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 온통 코로나19로 억제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이 오는 게 아닌가 싶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실종되고... 연일 불안스러운 뉴스만 접하니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마음까지 점령했나 싶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마음부터 치유해야겠다. 이 찬란하게 아름다운 가을은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기에 겨울이 오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고 길고 추운 겨울도 잘 감당할 수 있는 마음 맷집을 키워야겠다. 이제는 굶어서 죽지는 않을 세상은 됐기에 우울해서 죽는 사람이 늘어가는 세상이 됐다.
우리 끝까지 잘 살아 내는 거야~ 가을에 핀 쑥부쟁이 국화꽃 색이 더 선명한 것은 오래토록 기다렸다가 꽃 피워냈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