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인생은,
지금까지 무난하게 살아온 비결(^^)은
정의로운 마음과 선한 의지와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
그리고 무엇을 하건 집중하여, 될 때 까지 해보는 투지가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한번 필 꽂히면 앞 뒤 재지 않고 덤비고 집중하다가
깨지고, 상처받고,손발이 무수한 고생을 감당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는 불굴의 정신(거창하게도^^)이
저를 늘 곧추 세우게 했던 것 같아요.
현실의 중압감에 짓눌려서 휘청거릴 때는...
스스로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서...실컷 아프고,스스로 치료하여 어느정도 회복이 되면...
다시 중심을 잡고 세상과 소통할 수가 있었습니다.
자가치료하는 것은 습관이 되어서 내 안의 기운이 있을 때는
어느정도 저를 컨트롤 하며 살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갑을 전후하여 정신이 육체를 제어하지 못하고,
모든 기능이 고장신호를 보내는 노년기에 접어드는 증상을 보이자...
저는 그제사 제가 얼마나 몸을 혹사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기운을 내려고 용을 써도...기운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평생동안 써야 할 에너지를 다 꺼내서 썼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득하고 슬퍼졌습니다.
노화현상과 만성 피로와 갱년기까지 겹쳐서, 몸과 마음의 기운이 소진된 것입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 세아이의 엄마로 산 세월은 무한대의 헌신과 배려에서 유지 할 수가 있었기에...
저는 어느 순간 체력이 기울고, 몸이 힘드니 현실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니 우울증이 안개처럼 휘감았습니다.
(아마도 제 나이 쯤에서 누구나 느끼는 현상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커리어우먼으로 내 인생을 빛나게 독립적으로 살리라던 처녀적 꿈은 온데간데 없고,
아내와 엄마의 길은 온통 나의 헌신과 배려를 요구 하였습니다.
가정을 지키는 것은 도를 닦는 길이었습니다. 엄마가 되는 길은 순교자가 되는 길과 같았습니다.
가정경제를 꾸리고, 재건하기까지...
홀로 떨치고 일어선 자만이 느끼는 고독과 인내가 바닥이 나는 시기가
제가 겪은 시기인 것 (55세에서 65세) 같습니다.
우리들이 짊어진 무거운 짐, 그 무게는 경험한 자만이 공감할 것 같아요.
처음 가는 길이고, 경험이 없는 길이었기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늘상 무언가 부족하였습니다.
실은 가없는 사랑이 해결해 주는 것이었는데, 무언가 열심히 하려고만 했었던 것 같아요.
따뜻한 사랑으로 품는 것은...자신을 녹이고 내세우지 않는 것이었는데...
깎이지 않는 본성을 다스리지 못해, 늘 속으로 갈등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남편의 이른 명퇴로하여...제가 가장아닌 가장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았던 세월이
저를 분발하게 하고, 능력을 키우게도 하였지만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고달픈 책임이었습니다.
그래도 늘 긍정적으로 감당하며 이겨 나왔는데, 체력이 떨어지면서
저를 지탱하던 중심추가 온통 흔들렸습니다.
32살 2월에 결혼하여 32살 12월에 큰아이를 재왕절개로 낳았고(허니문 베이비),
34살에 둘째를 또 재왕절개로 낳았고, 또 덜컥 들어선 셋째를 38살에 재왕절개로 낳았습니다.
그리고 40살에 복막이 터져서 또 개복수술을 하였습니다.
10년 사이에 4번의 개복 수술을 하여...저는 기진맥진하면서 육아를 하였는데,
남편이 또 47살에 명퇴를 당하였습니다.(나와 동갑내기)
올망졸망 아이들 셋인데 큰아이가 중3일 때 명퇴를 하니...
저는 또 삶에서 혼비백산 하였습니다. 그때부터...저는 모성애의 발로인지...
젖먹던 힘까지 다 꺼내서 살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농사로 세아이들을 다 키워야 하는 삶은...
저를...공중곡예까지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수퍼울트라캡숑 우먼^^)
치열했던 저의 농부의 삶은 아이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감으로,
배수진을 치고 헝그리정신으로 이겨 낼 수가 있었습니다.
세아이의 엄마가, 그 누구보다도 경제적인 관점을 벗어 날 수가 없는 처지였지만...
소신껏 유기농 농부로 20년을 살아낸 것은...스스로 칭찬하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스스로 정신무장하는 것이 지나쳐서...거의 유기농교주 수준으로 저를 무장했습니다.^^
저는 엄마로, 아내로, 가장으로(남편이 있었지만 경제적인 책임이 어느새 나에게로)
혼신을 다해 살아냈습니다.
50대 중반을 지나면서...체력이 하강하니 제 몸이 점점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감당하던 일이 벅차서 , 제 몸은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57세에 종합검진을 받으니, 신체 나이가 67세로 나왔습니다.
59세에는 머리대상포진이 왔습니다.(아찔)
그 즈음해서부터는 정신력으로만 극복할 수 없는 체력의 한계를 늘 느끼며, 허덕거렸습니다.
농장의 규모를 점점 줄이고, 내가 감당할 만큼만 경작했습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고, 직장을 다니던 친구들은 정년 은퇴를 하였습니다.
자발적 은퇴는 아니고, 제가 감당할만큼의 일로 규모를 줄이고,
큰 틀을 수정해야 할 시점에 왔습니다.
내 나이에 덜컥 쓰러지는 일이 많은 것은, 체력은 떨어졌는데,
그 전의 속도로 계속 달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를 다시 리셑해야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 즈음에 만난 것이 황토맨발걷기였습니다.(지난해)
저는 황토어싱(맨발걷기)을 통해서...거듭나고 있습니다.
다시 나를 추스리며...정비하며...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신인류 어싱 인간으로 거듭 나면서 망가진 몸을 회복하고, 정신도 다시 새롭게 하고...
20대처럼 꿈도 꾸고자 합니다.
저는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했고, 명퇴한 남편에게도 일자리를 만들어서
(미리 농사 지어서 남편이 명퇴 후 농부로서 자리잡게 함)
남편이 농림부 장관상도 받고, 농촌진흥청장상도 받고, 단체의 회장도 하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내조는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느라고, 내 자신은 언제나 후순위로 두고, 일만 열심히 하여
온 몸이 방전되어, 삶의 기운이 바닥이 났으니,
이제는 저는 제자신을 돌봐야 합니다.
남편도 자식도, 내가 아플 때, 대신해 줄수도 없고 위로도 안 됩니다.
오직, 내 스스로 극복해야만 할, 나의 건강입니다.
<더늦기 전에>...
남은 삶은 나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맨발인간으로...
새까만 발이 그간의 나의 어싱열정을 대변....
(못생긴 발이 더 못 생겼지만...)
밤에도....
어르신 족적
지나시다가 들린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박동창 회장님 뵙는 영광을...
박동창 회장님과의 만남은 내게 또다는 터닝포인트가 될 듯...
맨발걷기 전도사 박동창 회장님이 즉석에서
맨발걷기의 위대한 효능을 설파 하시고...
https://youtu.be/K5i1yqm52Yc?si=dspkGBj-cYw-EAxI
얼결에 즉석 인터뷰를 당하여...
나도 맨발 걷기 전도사가 되기로 결심.
아픈 사람들에게...길을 알려 주는 것이 앞으로의 내 소명이 되기로 하였어요.
암을 비롯해 아프신 분들...맨발 걷기 사례를 보시고...맨발 걷기로 건강을 회복 하시기를요.
내 주변에 가장 아끼는 우리 작은 고모와 은숙씨도 암 투병 중입니다.
맨발 걷기로 말기암도 이겨낸 사례가 많습니다.
(박동창 회장님 유튜브를 구독하여 사례를 들어 보세요)
맨발걷기는 나의 노력과 투지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사는동안 건강하게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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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서귀포 숨골공원 황토어싱장을 만드신 김영철 과장님께서
책을 쓰시는데 저의 맨발 걷기 후기를 써 달라고 부탁 하셔서 보내 드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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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귀포 숨골황토 어싱 광장을 찾아서 맨발 걷기를 시작한 것은 2023년 7월 29일입니다.
(어싱광장 생긴 후 한달쯤 되었을 때)
날짜까지 기억하는 것은 황토맨발걷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 제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귀포에 황토어싱광장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한번 경험 해보고자 갔는데,
저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껴졌습니다. 황토가 물에 젖은 곳도 있고,
적당히 말랑말랑하여 찰진 반죽처럼 촉감이 좋은 곳도 있고, 마른 곳도 있고,
다양하게 걷는 체험을 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방 공간이 탁 트여서 드넓은 하늘을 볼 수도 있고,
어싱광장 주변이 산책길과 공원이라서 풍경이 더없이 아름다왔습니다.
운동장처럼 넒은 황토 광장도 맘껏 활보할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늘과 땅 가운데 두팔을 벌리고 맘껏 걸을 수 있는 풍경이 좋았고,
황토의 촉감은 어릴 때 흙놀이 하던 향수도 불러 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맨발로 걷는다는게 어색했으나...맨발로 걷는 자유함이 저를 마음마저 날개를 달게 했습니다.
하늘 향해 두 팔을 한껏 펼치고 , 맨발로 걷고,뛰고,춤추고(마음으로) 절로 노래가 나왔습니다.
감성적인 나에게는 최고의 공간이었습니다.
운동을 싫어하여 평생 운동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는 나여서 운동이라고는 입운동(먹는 것과 떠드는 것)만 하던 나였는데,
이런 다채로운 황토광장의 환경이 저를 매일 황토광장으로 이끌었습니다.
매일 귤밭에서 일을 하니까 운동할 시간도 없고 할 필요가 없다며 억지논리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싱을 하고나서는 일 하는 것은 운동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몸은 일에 지쳐서 늘어졌고, 일 하고나서 집에 오면 만사가 귀찮다며 널부러져서 꼼짝도 하기 싫어했습니다.
밥 먹고나서는 식곤증에 졸려서 그대로 자기 일쑤였고, 몸은 더 무거워지고 무기력해졌습니다.
몸은 점점 더 살은 찌는데 힘은 없어지고, 힘드니까 더 안 움직이고 악순환이 반복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나쁜 습관이 나를 망치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신발 신고 걷는 것도 무릎관절이 안 좋아서
걸을 때마다 무릎이 자극을 받아서 아팠기 때문에 걷는 것을 싫어 했습니다.
몇년 전부터 무릎관절 연골이 닳아서 연골 주사도 맞고 하였으나 통증은 개선되지 않았고,
퇴행성이라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하나 하고 주변의 경험자들 이야기를 듣고,
무릎수술을 내심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점에 어싱광장을 찾게 된 것이라서 나의 인생 터닝포인트가 된 것입니다.
수술 안하고 관절염을 개선할 수 있을까하여 매일 아침마다 한시간씩 걷고,
몇개월 후부터는 점심 먹고 나서도 전에는 낮잠을 자던 시간에 걸으러 갔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 걸었습니다.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서 아무도 없는 넓은 황토광장을 혼자 독차지 하고 걷는 기분도 좋았습니다.
저는...운동인간(신인류 어싱인간)으로 변신하고 있었습니다.
황토광장이 저에게 준 기적이고 선물이었습니다.
이후, 일년동안 매일 황토어싱 광장을 찾아서 걸으면서, 저는 신인류 어싱인간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황토 어싱(맨발걷기)을 하면서 걷는 것이 즐거워졌고, 다리 근력도 생기면서
걸어서 하늘까지 가는(마음으로) 성지순례길인,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은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한달 이상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루에 수십km를 걸어야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 남은 삶에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기에,
저는 저를 극복하기 위해서 산티아고를 가고 싶습니다.
굳이 산티아고까지(우리나라도 좋은데 많다며)...하실지 모르나...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하고...나를 억누르던 일상의 관습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얻고 싶어서입니다.
어싱을 하면서 식이 조절도 함께 하여서 6개월만에(처음 시작부터는 잘 몰라서 몇개월 적응하고 그 이후)
살도 10kg 이상을 덜어냈습니다.
힘들 때마다, 스트레스가 있을 때마다 먹어야 힘이 나는 줄 알고,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아서 축적된 살들이 제게서 떠나갔습니다.
시원하고도 섭섭합니다.
(섭섭한 것은...제가 통통해서 주름살이 없었는데..갑자기 주름살이 생겨서 다시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주름살도 어싱하여 개선 될 수 있을지 걷고 또 걸어보려고 합니다.)
황토어싱광장은 제게 다리 힘을 키우게 해 주었고, 꿈을 꾸게 해주었습니다.
걷기 힘들고, 걷기 싫었던 제가 이런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숨골황토어싱장 덕분이었습니다.
좀 더 상세하게 표현하자면, 황토어싱광장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관리하신 서귀포시청 공원녹지과
김영철 과장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서 최선을 다해서(상투적인 업무의 연장이 아니라)
소신을 가지고 황토광장을 만들고, 점점더 좋은 환경을 만드시는데 온 열정을 쏟으셨기에,
제가 그런 혜택을 맘껏 누릴 수가 있었던 겁니다.
서귀포 시민으로서 이렇게 좋은 혜택을 맘껏 누리게 되어 행운입니다.
인류가 태초에는 맨발로 걷고, 사냥하여 먹을 것을 찾았지만, 점점 문명이 발달하면서 신발을 신게 되고,
온갖 오염된 환경으로하여 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의식있는 몇명의 사람들이 맨발걷기의 효과를 전파하기 시작하자 전국 곳곳에 황토길을 만드는 붐이 일었는데,
서귀포시에서는 저루지로 만든 공간을 활용하여 황토어싱장을 만들었습니다.
홍수를 대비해서 만든 저루지는 평소에는 거의 쓰임새가 없어서 드넓은 땅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서귀포시 공원녹지과 김영철 과정님의 적극적인 제안과 실행으로
시민들의 건강을 위한 축제의 광장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건강 개선 사례가 늘어나고, 시민들은 황토어싱광장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바램이 더 있다면, 드넓은 운동장이라서 쉬었다가 운동하려고 해도 그늘막이 없어서,
황토장과 중간 테크길 사이에 쉼터를 만들어서 근력 운동기구도 몇개 설치하고,
야외카페처럼 테이블과 의자와 파라솔을 비치하여...각자가 싸온 음료수와 점심도 먹을 수 있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이 몇시간씩 쉬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담소도 나누고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그림이나 요가, 악기 등등...) 좀더 다채로운 광장이 되어
야외카페처럼 공간이 되면 더 좋겠습니다.
그리고 편백톱밥 걷는 곳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비가 오면 황토가 너무 질퍽하여 톱밥 위를 걷기도 하는데,
길이가 짧아서 금방 돌아서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2배정도로 연장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꽃을 관리하는데 많은 비용이 든다면...그냥 자연스럽게 놔 두고...
간간히 예초만하여 주변 환경을 건강하게 가꾸었으면 합니다.
꽃을 가꾼다고 제초제를 뿌리는 것은 아주 안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황토어싱광장의 주목적은 시민들의 건강 기여가 가장 중요하므로
주변환경도 친환경으로 관리하여야겠습니다.
(한달에 한번 정도...어싱광장을 애용하는 시민들이 주변에 풀뽑기 행사를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다함께 하면 모든 것이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습니다)
관광객들도 일부러 찾는 건강 황토 광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귀포시에 김영철 과장님이 계신 것은 서귀포시민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과장님께 감사의 큰 절 올립니다.
숨골황토어싱광장을 사랑하고 애용하는 서귀포 시민 김영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