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치인가?
내가 전혀 여행을 갈 형편이 못 되었을 때,
나는 여행이 팔자 좋은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마뜩찮게 보이기도 하였다.
먹고 살기 바빠서 여행은 언감생심, 삶의 한복판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연휴 휴일이면 해외로 나가는 인파가 장사진을 이룬다는 보도를 보면, 혀를 차기도 하였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부럽다못해, 괜한 시기심까지 더해져서...
나라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는 데, 국민들이 흥청망청 하는게 아니냐며 볼멘 소리와 삐딱한 시선을 가진 적도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데서 오는 부정적 견해였다.
생각은 바뀐다.
60세를 넘기면서...무작정 내달리던 삶의 방식에 지치기 시작하고,
몸이 여기저기 고장신호를 보내오니...삶의 태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어느날 덜컥, 암이라도 걸리고, 심정지로 돌연사라도 하면....
그런 깨달음이 나를 자꾸만 자각하라고 채근했다.
2년전 농약사건으로 행정심판까지 가면서 (승소하긴 했으나 휴유증이 심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밥 먹다가 스르르르 의식을 잃고 119에 실려 간 것도 있고,
지난 해 10월 마지막날에 막걸리 한잔과 문배주 두잔(아주 작은 잔)을 마시고,
의식을 잃은 적이 있어서...내개도...어느날 갑자기...쓰러질 수도 있다는 자각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서는 조심해서 까치걸음으로 나를 들여다 보며 걸었다.
거미엄마같은 모성애가 내 안에도 있지만, 내 기운이 약해지니, 모든게 아득해졌다.
지금 생을 마감하면...조금 억울 할 것 같아......아직은 좀 더 할 일도 있고...누리지도 못했는데...
하늘을 떠받치고 있던 아틀라스처럼, 온 힘을 다해서 나와 가정을 떠받히고 있었는데,
점점 힘들어지고, 짊어진 짐을 벗어 던지고 싶어...하는 소리가 이명처럼 계속 들려왔다.
너무 무거워 ~ 숨 쉬는 것도 힘들어~.....
일생에 큰 지각변동이었던 행정심판 사건과 둘째 아이의 긴 방황과 우울증
(1년6개월 집 밖을 안나가는 아이를 지켜보고 기다려 주기), 큰 아이의 오랜 고시생활이 나를 극도로 지치게 했다.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했으나...나는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듯 방전 되었다.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한 발 더 나가면 쓰러질 것 같아~하는 자각이 밀려왔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끊어내고 자유하기,
억지로 감당하지 말기,
내가 세상에 없다면, 그 무엇이 중요한가?
여행에대한 갈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를 짓누르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진정한 나를 만나고 싶었다.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살고 싶어 했는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동안 열심히는 살았어도 나를 돌보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라도 나로 돌아가서, 나의 빛깔로, 향기로 살다가 가자!
누군가를 늘 맞추려다가 상처 입고, 괴로와하던 나를 더이상 하지 말자.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면서 내가 나를 위해 주자.
여행이 또 다른 숨 쉬는 과정이라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그래서 나의 첫 여행이 시작 되었다.
막내가 건축기행을 간다해서 따라 나섰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일상에서 떠나는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었다.
막연히...여행이 사치라던 생각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우물밖으로 끌어내어, 세상 넓은 것을 보고, 느끼고,체험하고,즐기는 것.
그렇게 충전하여...그 에너지로 또 삶을 잘 감당하기.(일생 벗어날 수 없는 기본적인 삶의 무게)
여행 또한 또다른 극기가 동반된다는 것도 경험했다.
짧은 일정에 많은 것을 보려고 패키지 여행은 보통 하루 15000보나 20000보 정도 걸어야 해서
건강이 허락지 않으면 여행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1년동안 어싱(황토운동장 맨발걷기) 을 하여 그나마 어느 정도 걷기 연습한 덕분에
따라 다니며 눈요기라도 볼 수 있었는데, 여행은 가슴이 뛰고 다리가 성할 때 떠난다는 말을 실감했다.
패키지 여행은 고객 감동할 수 있게 하려고,빡빡 한 일정에 음식도 기호대로 못 먹긴 했지만,
짧은 시간에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위험으로부터의 어느정도 보호막이 있고,
여행 절차의 복잡함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장점이 있다.
여행은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해.
이번 스페인 여행은 건축설계를 전공한 막내가 스페인 건축기행을 한다하여 따라 나섰다.
나는 여행이 로망이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부족하여(고등하고 졸업하고 떠난 아이들)
세대간의 소통부재도 있지만, 엄마가 느끼는 것은 내 품안의 아이들과의 소통이 잘 안되어서 안타까왔다.
38세에 낳은 막내는 어릴때부터 자신의 일은 알아서 스스로 해 내서, 키우는데 수월했다.
막내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없다. 아이들은 부모의 간섭(^^)과 잔소리로부터 벗어나서
자신 맘대로 사는 것이 좋겠지만, 부모는 늘 아이들에게 신경이 가 있게 마련이다.
여행을 핑계로라도 내 품속의 아기였던 자식과 함께 하고픈 부모 마음.
그런데 막내는 어리벙벙한 엄마를 자신이 보호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소소히 잔소리를 하니(늦게 걸어도, 빨리 걸어도, 먹을 때도,어리뼝뼝해도, ...)
나는 한편은 보호받는게 좋기도 하고, 한편은 내심 불편했다.
잔소리는 또다른 사랑의 표현이지만, 잔소리 듣는 기분은 좋지는 않았다.
남편이었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째려 보며 제압(이제는 전세역전)했겠지만,
자식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호자 노릇을 자처하는 자식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잔소리는 듣기 싫으니...여행은 마음 맞는 친구와 하는게 좋을 것 같다.^^
뜻 맞는 친구들과 거침없이 감정 발산하며 신나게 여행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착하고 의젓한 막내와의 여행은 일생의 가장 좋았던 추억이 될 것이다.
젊은 아이들은 <세계는 하나다>를 실감 할 수 있게, 인터넷으로 다 찾아 다니며
자유로이 여행 하는게 익숙하지만, 나만 해도 간신히 변화를 쫒아가는 중이라,
모든게 서툴고, 어리둥절하여...하나씩 배우고 익혀서 자유여행을 도전해볼까 한다.
쓰고 남는 돈은 언제나 없으므로...다른 부분을 내핍하여...매월 얼마간의 여행경비를 저축하여...
내안의 에너지가 고갈될 때...여행을 떠나 보아야겠다.
무릎관절이 망가져서 걷기가 힘들었는데, 열심히 운동하여(복원될까 모르지만)...
산티아고를 가보는게 내 소망이었는데...
이번에 스페인 건축기행을 수박 겉핱기로 보고 오니...
스페인 건축을 다시 찬찬히, 꼼꼼히 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또 꿈으로 남을지도 모르지만...아예 1년 살기하여...산티아고길도 걷고...스페인 건축도 꼼꼼히 보고, 느끼고...
이웃 유럽 국가들(프랑스, 이탈리아, 영국,네덜란드,이집트, 북유럽 등등)도 다녀 보고...
그런 꿈이 새록새록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자면 영어공부 스페인어, 불어 등 공부부터 좀 해야 할 듯....
배낭 하나 둘러메고, 바람처럼 다녀보고 싶어라~
(언제나 꿈꾸는 몽상가인지라...이 꿈만으로도 한동안 가슴이 벅찰거야)
꿈이 없어졌을 때가 힘들었지, 꿈이 생겨서 꿈만 꾸어도 좋다.
나는 꿈꾼다, 고로 존재한다.
나와 비슷한 감정의 경험을 하는 또 다른 김영란에게
고백하는 이 글은...
<우리 이제 용기 내자구...우리에게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요.
이제부터...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2024년 10월 31일...창밖은, 짦은 가을이 쓸쓸한 풍경이다. 스산하다.
올 가을은 따뜻한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다.이상기온 실감.
하지만 많은 것을 극복한 나는 64세의 가을을 더이상 슬퍼하지 않으면서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고...
몸의 무게를 10kg 이상 덜어낸 것은...나의 또 다른 변신이다.
다들...나를 잘 못 알아보고( 빵빵하던 얼굴이 홀쭉해졌다) 건강 염려 하지만...
인명은 제천이라 하였으니...명대로 살다가 가면...그나마 족할 터...
모든게 담담해졌다. 지금까지 두 다리 성하게 살아온 것도 감사 할 뿐...
살아있는 동안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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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으아리 덩굴을 담장에 올렸는데
여름에는 나비 애벌레들에게 잎과 순을 헌납하여 제 때 꽃을 못 피웠지만...
늦게라도...이렇게 꽃 피워 주었다.
늦게라도 꽃 피운 으아리가 내게 희망을 준다.
늦게라도 꽃 피우는 으아리가 용기 내라고 활짝 웃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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