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꿈꾸다■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 ㉔
농촌여성신문 | webmaster@rwn.co.kr
"꽃동산에 가슴 설레는 마중물 언니의 뜰에 폭풍칭찬을 더하러 향한다" 60대 은퇴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들은 은퇴하고도 그동안 일한 시간만큼의 시간을 더 산다고 예고하는 시대를 맞게 됐다. 중요한 시대의 변곡점을 몸으로 방어하며 살아냈던 우리세대가 또 한 번의 변신을 해야만 하는데, 이미 노년의 반열에든 심신이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게 된다. 나만 해도 지난해 60세를 맞으며 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것처럼 몸과 마음이 긴장했다. 이제는 환갑은 공휴일 정도고, 칠순잔치를 하는 게 대부분이다. 70대도 경로당에서는 막내로 심부를 하는 처지라니, 이제는 80대는 돼야 노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작가 박완서님이 돌아가신 나이가 80세 즈음이니 나도 그 즈음해서 생을 마감하면 무난하겠다고 생각 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10대에서는 30대에 요절한 전혜린을 동경한 적도 있으니 생각은 나이 따라 계속 변하고 있다. 요즘은 100세를 넘기신 김형석 교수님을 보면서 자기관리에 철저한 모습을 마음에 담아두기 시작한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100세를 지향하는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달라지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내는 것이 버거워지기 시작하는데, 노년의 템포로 40년을 더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치면 신발끈을 다시 동여매야 하나 싶다. 인생 대선배 김형석 교수님은 60살 이후의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해 “배움이 있는 삶, 일하는 삶, 취미가 있는 삶이 있어야 뒷방 신세로 밀려나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렇게 유명하신(^^) 분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내 곁에 삶의 이정표를 몸소 보여주고 계신 분이 계신다. 마중물 언니는 올해 80세다. 나와는 19살 차이라 나이로는 부모님 맞잡이지만 큰언니가 78세라 나는 언니라고 칭하며 손가방처럼 붙어 다녔다. 13년 전에 귤나무 회원제를 하면서 회원으로 등록하시고, 그해 서귀포로 이주하시면서 나와의 조청 같은 끈끈한 인연이 됐다. 아래로 40대까지도 커버할 수 있는 재치와 젊은 마인드와 건강을 가지시고 무한에너지를 방출하시는 인생 선배가 가까이 계셔서 내가 잠깐이라도 무기력증에 빠지면 반성하게 해주는 등대 같은 분이다. 용의 기상을 동경했으나 진흙탕의 미꾸라지로 살아가게 된 4차원 동포들을 규합해서 “겸손은 힘들어~”라며 팀을 만들어서 왕언니 노릇을 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서로의 장점을 존중하면서도 마구 깎아 내리는 이상한 모임이다. 해안의 몽돌자갈처럼 서로가 물을 끼얹어서 빛나게 해주는 존재들과의 조합은 만남을 즐겁게 해준다. 마중물 언니는 올해 80세를 맞아서 꿈의 등불을 다시 켰다. 4년 전 반려견 우리를 보내고, 2년 전 옆지기님도 소천하시고, 홀로 되시면서 한동안 깊은 동굴에 칩거하듯 외부와 단절하셨다가 올해부터 훌훌 털고 일어나셔서 다시 꿈의 돛단배를 띄우셨다. 10년 전 황무지 땅에 집하나 짓고 작은 나무들을 심기 시작하시더니 이제는 꿈꾸던 숲 정원이 됐다. 67세에 오셔서 집을 빌려서 올레꾼들의 숙소 B&B를 멋지게 하시더니 이제 80세에 다시 꿈 하나 품고 정원을 가꾸신다. 수국동산이 돼 가슴이 설렌다는 마중물 언니의 뜰에 폭풍칭찬을 더하러 오늘도 나의 발길이 향한다. 80세, 꿈꾸다... 바라만 봐도 즐겁다. |
귀농 멘토가 멘티에게...
■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 ㉓
농촌여성신문 | webmaster@rwn.co.kr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세상이니 무한경쟁 속에서 무한질주하라~" 50~60년대 태생들이 은퇴 세대가 되면서부터 불기 시작한 귀농 열풍. 은퇴 세대들의 직업 단절에서 오는 많은 사회현상들을 조율하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만든 것이 귀농열풍으로 이어졌다. 기록을 뒤져보니 2013년부터 귀농열풍으로 인해 귀농교육이 생겨났고, 나는 서귀포시청에서 주관하는 귀농교육 중 친환경귤 멘토로 발탁돼 멘티들을 교육하게 됐다. 과장된 광고를 싫어하는 나는 소득 1천만 원으로 살아가는 법 등을 가르치며 5년만에야 5천만 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된 내 경험을 전달했다. 남편이 퇴직할 때의 연봉을 기준으로 소득목표를 세웠다, 그 정도면 내 식으로 세 아이들을 교육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목표를 연봉 5천만 원으로 세웠던 것이고, 직거래를 통해서 5년 만에 그 목표를 이뤘다. 도시근로자였던 우리는 퇴직하고 나서 쉽게 생각하고 프랜차이즈 식당 등을 운영하다가 몇 년 안에 퇴직금 전부를 다 날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에, 5년 후에는 순수익 5천만 원을 달성하기로 목표했고 그사이 적자는 감수하기로 넉넉하게 시간을 잡았다. 내가 농사로 방향을 튼 이유는 70~80대에도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 농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길게 보고 일희일비 하지 않기로 했다. 가진 재산이 집 한 채였기에 집을 팔아서 땅을 샀다. 유기농사를 지으려면 땅을 살리는 게 최우선인데, 임차를 하면 언제 주인이 되돌려달라고 할지 모르고, 그래서 지속적인 영농을 할 수가 없겠기에 대출을 받아서 땅부터 샀던 것이다. 배수진을 치고 집중을 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든 분야가 공통된 진리다. 2013년부터 5년 정도 시청이 주관한 귀농교육에서 유기농귤 멘토를 했고, 이후에는 1:1로 현장실습하는 멘토 제도가 생겨서 남편이 실습생 멘토를 교육했다. 현장실습제도는 3~6개월 정도 현장에서 실습을 받으면서 교육받는 것인데, 멘티는 귀농한지 5년 이내여야 하고 귀농교육을 이수한 자 중에서 선발한다. 성별 제한은 없고 나이는 만 60세 이후는 불리한 것 같다. 현장실습 멘토제도는 멘토가 월 40만 원 지원받고, 멘티는 80만 원을 지원 받는다. 남편은 40만 원으로 멘티에게 점심을 사주고 간식도 사는데, 멘티는 생활비에 도움이 된단다. 남편은 주로 유기농귤 재배 이론 교육과 방제소독 풀베기 등 실습 위주로 교육하고 나는 마케팅 교육을 담당한다. 마케팅이 별건가? 잘 팔면 되는데, 실상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내 경험을 이야기 하지만 기본은 단순하다. 상품이 좋으면 홍보가 필요 없으니 물건을 잘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라고 교육한다. 내가 했던 블로그 마케팅은 이미 누구나 다 하는 길이니 이제는 유튜브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도 있지만 블로그를 기본으로 하고, 미래는 유튜브를 해야 한다고 재차 역설한다. 무한경쟁시대라 힘들지만 1인 미디어시대라 자본이 없는 사람일수록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정보와 재미, 감동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노력하면 넓은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시대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세상이니 무한경쟁 속에서 무한질주 하라고 조언한다. 그대는 젊다. 달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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