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매맘은 내가 프로필에 쓰는 나의 닉이다.
내가 세자매엄마라는 뜻이다.
김영란이라는 이름은 결혼 전까지 나의 대명사였고,
결혼 후는 아이들 이름을 앞세워 누구 엄마라는 이름으로 거의 불렸다.
내가 자의식이 강해서, 나로 살고 싶다고 늘 외치지만...
실제로는 나는 엄마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나의 촉수가 끊임없이 아이들에게로 향해 있다.
나의 에너지가 대부분 아이들에게 향하고 있는 것은
내가 나의 엄마를 닮아서인지 모성본능이 강해서인 것 같다.
내가 삶에서 장대높이뛰기의 힘을 발휘 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아이들이었다.
예슬, 예지, 예인이는 나의 세 딸이고,
나는 이 아이들 이니셜을 희망이, 믿음이, 기쁨이로 불렀다.
희망이는...나의 희망이란 뜻이 아니고...희망을 잃지 말고 살자는 뜻이었고,
믿음이는 믿음직스러운 아이란 뜻이 아니고, 믿음을 잃지 말고...믿어주자는 뜻이었다.
기쁨이는...아가때부터...그냥 기쁨을 주는 존재였다. 막내는 그런 존재였다.
희망이는 내가 결혼(서른두살)하고 첫아이가 바로 들어 섰는데,
나는 직장을 가지고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직장생활을 병행했었다.
나이는 먹었어도 엄마로서는 왕초보인데다가, 빡센 직장 생활로 스트레스도 많았고,
육아를 분담해주고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이웃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했다.
그 이웃이 우울증을 앓는 사람인 줄 나중에야 알았고...
아이는 엄마와의 분리불안증이 극심해서 밤 새도록 잠을 안자고 울었다.
밤새 잠을 설치고 다음날 직장에 가서 일을 해야 하니, 나도 피로도가 심했고...
무엇보다도 아기가 웃지 않고 수심에 가득차 있는 표정이...
이 상황을 지속하면 안된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나는 뒤늦게 전공을 바꾸어 요리사가 되었고, 평생 직장으로 삼기를 원했지만,
아이가 그 길을 지속하지 못하게 하였다.
아기가 돌 일 때 결단을 내렸다.
나의 성취가 중요한가, 아이의 운명이 중요한가...
당연히 아이의 운명이 중요하였다.
아이때문에 전업주부가 되면서...나는 경력단절자가 되었고...육아에만 전념하였다.
그 당시에는 나의 길에 대한 미련으로 마음이 안달하곤 했지만...돌아보니...
내가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둔 것은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였다.
내가 그때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아이는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마음의 문을 닫았을 것이다.
정신의 경계선은 종이 한장 차이라서...
극심한 분리불안증을 극복하는데는 긴 세월이 걸렸다.
나는 아이와 그림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말이 어눌한 아이가 자신을 표현하는데 그림으로 표현하게 자극하였다.
이 세상의 어떤 선생이 엄마를 뛰어 넘겠는가?
끊임없이 넘어지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기다려 주고...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엄마라야...감당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지양하고, 내 식으로 감성을 자극하고, 성취하는 방법으로
아이와 함께 손잡고 걸었다.
그림은 내가 학창 시절부터 좋아하는 것이라 내 식으로 아이를 자극하였다.
남편 혼자 벌어서 세 아이 키우고, 재테크까지 해야하는 상황이라,
아이들은 학원을 보내지 않고,방과후 수업으로 예능교육을 시켰고...
그림은 엄마랑 아이랑 함께 그리곤 했다.
그림은...단순히 기술적으로 그리는 테크닉뿐만 아니라,
창의성, 사고력, 관찰력 등을 함양하는 종합 교육이었다.
책을 읽고서 그림일기를 그리는 것도 두가지 이상의 효과를 배양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나도 여러가지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엄마로 사는 것은...새로운 세상에서 내가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희망이가 인문계고등학교를 갔지만,
어릴때부터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있어서였는지,
중고등 시절에도 미술은 다른 과목보다 탁월했고,
각종 대내외 미술대회에서도 상을 받곤 하였다.
대학을 선택해야 했을 때...가정경제 상...미술대학을 보내기가 나는 부담스러웠다.
세아이나 있고...아빠는 명퇴하고...우리는 낭만농부(비현실적인)여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는 미술대학을 가고 싶어했다.
나도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경제적인 이유로 그 길은 접었는데.
아이의 진로 앞에서는 망설였다. 무능한(^^) 부모때문에 아이가 꿈을 접는다는 것은...
나의 직무유기인 것 같았다.
그래서...아이에게...직장을 가지면서...그림을 그리라고 하였다.
그림만 그리는 삶을 살 경제적인 여유가 없으니...직장을 다니면서...그림을 그리도록...
그래서 미술 선생님이 되라고...국립사범대학을 보냈다.
그런데...아이에게 감성 자극만 했어서,
규격에 맞는 시험제도를 통과하는 선생님으로 가는 길도 지난했다.
임용고시 공부 하느라...청춘의 20대를 다 보냈다.(돌아보니...이 또한 나를 시험케 하는 과정이었다.)
아이가 꿈의 방향은 정해졌지만...그 길로 가는 길은...평탄치 못했다.
아이도, 나도...그 세월을 감당하는데도 인내와, 끈기와, 좌절하지 않으려는 분발심과,
끊임없이 자신을 스스로 이겨내야해서...긴 세월을 인내했다.
그래도...그 길 또한 헛되지 않음이... 단단해지는 과정이었다.
남보다 늦되는 과정이...여러가지로 다져지게도 하였다.
그리고 나는....각자에겐...속도의 차이가 있기에 기다려주는 과정을 경험했다.
(거북이에게 토끼가 자신의 속도대로 다그친다고 거북이가 토끼처럼 뛸 수 있겠는가?
거북이 걸음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받아 들이게 되었다)
희망이가 긴...수험생활로 안타까운 회색빛 시간들에 갇혀 있어서,
2024년 나는 집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다시 리셑 해보자.
아이가 아주 오랫만에 엄마 곁으로 다시 왔기에.....'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카페에 가서 두어시간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다시 소통을 했다.
아이를 키운다고 했지...정작 우리는 긴 세월 제대로 소통 한 적이 없었다.
희망이가 어디까지 성장했는지...고민이 무엇인지...아이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엄마인 내가 아는게 없었다.(대학이후 집을 떠나서 일년에 몇번 만나는 시간이었기에)
나는 다른 것을 뒤로하고...아이와 시간 가지는 것을 최우선 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동안에...다시 서로를 느끼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나는 아이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희망이도 오랜 수험생활로 다시 불안정했던 감정들이 안정 되었다.
실은 어른인 나도...살아낸다고 용을 썼지만...
항상 출렁거리는 감정을 진정하지 못해서 불안정 했기에...
희망이와 내가 함께 하는 시간은 우리를 서로 정서를 안정하게 해 주었다.
나는 60세가 되었을 때, 내 시간을 쪼개서 그림 그리기 시작하면서
무언가 형용 할 수 없던 불안정한 정서를 조금씩 잠 재울 수 있었다.
모호한 그리움의 정체가...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갈증을 잠재우는데 그림그리기가 효과적이었다.
나도... 희망이도...다시...희망의 꽃 씨를 뿌리고...
자신을 들여다 보고..
그림으로 표현해보려고 한다.
희망이는...희망의 꽃을 다시 피우리라고 생각한다.
나는...엄마로서...김영란으로서...남은 삶을...그림으로 채우려고 한다.
우리는...끊임없이 출렁이면서...걸어가는 중이다.
삶은 출렁이는 바다다.

색연필화 (62세때...김영란)
그림 그리기 시작하고...나는 비로소...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내가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동경했구나...
희망이와 카페에서 두어시간 그리면서 소통하기
나를 찾아가는 과정
전공자가 다르긴 하네...나는 끙끙 거리면서 그리는데...희망이는 휙휙...
휙휙...희망이가 그리는 동생들 그림

희망이 그림

희망이 그림

희망이가 그린 온이 이야기(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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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가 그려준 나의 초상화(15년전 사진)

나도...카페에서 그림 그리는 중...
힐링의 시간이었다.

2023년 그린 나의 색연필화(부석사 목어)

2023년 나의 그림


내가 그린 초상화(15년전 내모습)

2023년

2023년

2023년

2023년

2023년





2024년

2024년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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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해는 그림일기로 풀어냈다.
세밀화가 아니라 그냥 쓱쓱 그리니까 수월했고...
그림일기가 재미있었다.
지난해 10월 19일로 정지된 그림 일기를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이 또한 내 모습이므로...
살아있다는 동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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