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 걷기(살과의 전쟁)
요즘 난 극기(?) 훈련에 돌입하여...매일...갈등에 싸여 있다.
다름아닌 <살과의 전쟁>을 9월부터 선언하고
아침 저녁으로 가까운 학교 운동장을 열바퀴씩 돌고 있는 것인데
그동안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한것이 없는 내가
아침 저녁으로 땀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리보폭으로 어기적거리며
빠른 걷기 운동을 하자니,일주일을 넘긴 지금 몸은 많이 풀렸으나
몸에서 심한 거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왕언니님의 인간 마루타가 되어~라는 글에 기세좋게 동참을 선언하고부터
이런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우선 걷기 운동부터 시작한 것인데...
일주일을 넘긴 지금...내 심정...괜히...공식적으로 그 말 했나부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선언을 했으니 줏어 담을 수도 없고...
입안에 혓바늘이 돋고, 몸이 천근 만근 뻐근한 상태이고 오늘 아침엔 머리까지 아프다.
그동안 방치상태였던 내 몸이 갑자기 근육 운동, 유산소 운동을 해대니
반란을 일으키며...이대로 편히 살고 싶어~하며 아우성을 해대는 것 같다.
처음 운동장을 7바퀴 돌고서 발바닥에 불이 나는것 같아서 더이상 못했는데
이제는 그래도 열바퀴를 채워도 발바닥에 땀이 나고 좀 견딜만하니
나아진 것은 분명한데...그새 살이 조금 내렸나하고 체크해봐도
요지부동, 오히려 물을 많이 마셔대어서인지 몸이 팅팅 불었나 싶기도 하다.
줄넘기를 하자면 몸이 무거워서 발이 공중에 뜨지를 않고
훌라후프는 뻣뻣한 허리에서 한번도 못하고 내려오는 나의 현재 상태.
고등 학교때 대비 15kg증가,10년전에 비해 10kg증가,이게 내 몸의 현실인데
그동안 아이 낳고 수술 여러번 하여 기력이 달린다고 먹는 것으로
보충한다고 마구 들이붓고,운동은 전무한 상태였으니
내 몸 중에서 가장 활발한 에너지를 구사하는 곳은 입운동 뿐이었다.
먹는 운동, 떠드는 운동...
하지만...언제부터인가부터 정신력만으로는 제어가 되지 않는 내 몸 상태를
확인하고...나도 내가 살길은 운동과 체력단련임을 절감하고 있었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터인데
이곳 제주도에 와서 내 맘속에 다짐하기를 아주 건강하게 되어서
한라산을 다섯번 정도 등반하고나면 이제는 자신있게 내 인생에 도전장을 내리라.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 말고 내 스스로 인생에게 도전해 보리라,
그런 결심을 다지고 있었는데 무더운 여름 나는 동안은 몸 추스리고 숨쉬는 것도
힘들고 지쳤었는데, 찬 바람이 아침 저녁 소슬하니 나도 용기를 내어
드디어 첫 도전을 감행 하였다.
내 인생을 향한 도전.
그동안 무사안일의 산물일지도 모르는(이유는 있지만서도) 내 늘어진 살과
무기력해진 건강을 다시 추스리는 것이 내 지상 최대의 과제.
우선 건강하면 다른 것도 자신이 생길것 같았다.
아직 내 나이는 절정의 나이임에도 의기소침해지고, 두려워지고
자신없어 지는 것은 우선 내 몸이 건강치 못함에서 오는 위축감이었기에
건강을 되찾는 것이 내겐 최우선 과제였다.
다른이들의 외모를 위한 감량과는 다른 내 감량 목표인 것이다.
이곳 학교 운동장은 시에서 지원하여 운동장에 트랙까지 설치하여
육상 선수들까지 연습하는 아주 좋은 곳이고 한바퀴는 정확치 않지만
400여m정도가 아닌가 싶다.눈짐작으로 300m보다는 큰것 같고
500m보다는 작은것 같다.그리고 꿈나무 선수들의 코치가 꿈나무들에게 하는
말을 엿들었는데 올림픽 선수는 2바퀴 도는데 2분 28초라 하였으니
그정도 아닌가 싶다.여하튼...내가...오리걸음으로 하루 4km정도는
걷고 있다는 얘기이다.오리 걸음이란 내 무거운 방뎅이(?) 무게가 실린 다리가
가볍게, 경쾌하게 들리지를 않고 마지못해 뻣뻣하게 들려 올려지는 것이라
아마도 옆에서 나를 보자면 마음이 앞서서 상체는 앞으로 나가고
몸과 다리가 안 따라 주어서 엉거주춤 엉덩이를 내밀고 어기적 걷고 있을 터이니
관객들은 우스꽝스러울 것 같다. 하지만 두고 보시라~
나도...언젠가는 사뿐 사뿐 걷고야 말테니...그렇게 이를 악물고 걷고 있는 중이다.
사전답사를 거치고 아침 6시에 학교 운동장을 항하여 나섰다.
해가 많이 짧아져서인지 아직 어스름해서 이곳 거리의 특성상 사람들이 대낮에도
별로 걸어 다니지를 않기에 아침 일찍 혼자 나서기 무서워(실은 겁이 많음)
환할 때를 기다리면 6시...집을 나서서 학교 운동장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첫날 걸어보니 아침에는 사람들이 많지를 않고 저녁에는 운동장이 빼곡하게
사람들이 걷고 달리고 있었다.저녁에는 어두워서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지를 않는데
아침에는 점점 밝아오니 서로를 잘 볼수 있어서 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면서 걷고 있는데 어떤 남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꾸로 돌고 있다. "하~배짱도 좋으셔라."
그런데 그것까지는 봐주겠는데 왜 사람 얼굴을 슬금 슬금 쳐다 보냐 말이다.
두번째 세번째 바퀴를 돌아서도 마찬가지...급기야 이 아지매 심사가 뒤틀린다.
"짜샤~운동하러 왔으면 운동이나 하셔~아줌마를 흘금 거려서 어쩌겠다는 것이여"
한대 쥐어 박고 싶지만 고개 숙이고 조신하게 걷는데
한쪽에서는 조기 축구팀이 모여서 트랙을 관람하고 있다.
그 앞을 지나며 다리가 뻣뻣 해지는데 자기들끼리 낄낄대는게 웬지 뜹뜨름.
무시하고 걸으려고 더욱 힘을 내 본다.
내 20대에 제일 꼴보기 싫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지나가면 흘금 거리면서
느끼한 상상을 하는지 낄낄대며 히죽거리는 부류들이었는데
지금도 난 느끼한 개기름이 번질 거리는 인간들이 그에 걸맞은 음담패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줏어 삼키는 인간들은 뺨을 한대 갈겨 주고 싶다.^^
(마음뿐이지만) 그래서 남편에게 가끔씩 훈화를 한다.
절대로 느끼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지 말도록...
난 상큼한 웃음과, 씩씩한 언어와, 담백하고 건강한 표정의 사람이 좋다.
운동하러 온 곳에서까지 느끼남을 만난다는 것은 유쾌치 못하지만
내가 어쩌랴.운동에만 관심 가지고 내 본분에 충실할 수 밖에...
한쪽에서는 올림픽 꿈나무들이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남학생 3명은 겨우2-4학년 정도 되어 보이고 여학생 한명은 4-5학년 정도로
보이는데 깡마른 여학생은 힘에 부치는지 울면서 뛰고 있었다.
어미된 심정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니 내 가슴이 에이는 듯.
내가 그 아이 엄마라면 저 광경을 보고 달리기를 시킬까 싶게 애처로왔다.
그렇게 그 아이를 며칠 만나면서 올림픽 뒤안길의 험난한 여정을 엿보는 것 같아서
한편 영광뒤에 숨은 땀과 고통을, 한편은 승자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가늠해 보았는데
어제 아침에는 꿈나무들의 코치가 유난히 아이들을 혹독하게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 여자 아이를 심하게 채근하면서 쉼없이 잔소리(?)를 하며 아이의 우는 소리가
점점 커져 갈수록 더 강도 높게 달리기를 시키는 것을 보고 나도 한숨이 다 나왔다.
저 코치님은...과연 아이를 위해서 저러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다 들었다.
오늘 아침에는 그 아이 이야기를 해 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한번 가서 보자하였더니 큰 아이가 따라 나섰는데...
오늘은 그 여자 아이가 안 보이고 남자 아이들 셋만 달리고 있었다.
웬일인지 모르겠으나...어제의 아이의 울음 소리로 보아 탈이 났거나
아마도 포기한다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며...
삶이 뭐길래...이런 생각까지 들었으나
그 꿈나무들의 혹독한 훈련이 내게 자극이 된 것은 사실이다.
어른된 자로...입만 살아서...최소한의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다면...
이런 자성이 나를 감싸니...아침에나 저녁만 되면 온갖 갈등이 밀려 오는 것을 누를수 있었다.
내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자신은 극복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만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나 싶은데...
마음은 그리 말하는데도 내 몸은 자꾸만 이대로 살라 유혹한다.
언제쯤이면 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몸이 가벼운 새털처럼
나도 바람을 가르면서 달려갈수 있을까 싶지만...
최소한 100일은 하고나서 결산 해 봐야지 않을까 싶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걸으면서 온갖 생각이 엄습한다.
내가 생계가 당장 급한 사람이라면 호사스럽게 운동이라고 할수 있을까.
생계때문에 만보를 걷는 사람이라면 살때문에 고민할 여력도 없겠지만
또한 살이 이유없이 오르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만은 사치병임에 틀림없다.노동 강도가 높은 사람은 절대 걸리지 않는 병.
요즘 다이어트 열풍이 불어서 온갖 건강 보조 식품과 다이어트 약품,
심지어 벼라별 성형 수술...이 모든 것들이 풍요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땀 뻘뻘 흘리고 일하며,하루 하루 살기 힘든 자들의 고민은 절대 아니다.
나도 어느새...내 무기력해진 의식과, 나태와, 과잉 공급과, 무절제의 산물로
건강을 피폐하게 하였고,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지만
이제 건강해 진다면 일부러 살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보다 생산적인 곳에 내 에너지를 쏟아서,
작게는 나를, 가정을, 보다 크게는 사회를 건강하게 돌보는 일에
내 에너지를 쏟아야지 않겠느냐는 반성이 밀려 왔다.
보다 건강한 사회는 내 마음부터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서 부터라고 다짐하게 되었다.
머릿속은 이렇게 생각 하면서 걷고 있지만...
오늘도, 어제도,포기의 달콤한 유혹이 나를 엄습한다.
힘 내야지.
2004.9.9 英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