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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겁없는 엄마(3)
농부김영란
2004. 2. 22. 20:19
세 아이 모두 제왕 절개로 낳고서 불혹의 나이를 맞으려니
태산 준령을 넘어가듯 숨이 가빴다.
32,34, 38세에 제왕 절개를 했으니 내 몸이 수술 회복도 되기전에
연거푸 배를 가르는 그 무모한 일을 감행한 나는?
도대체...내가 생각해도 아연 실색할 인물이다.
아이를 셋이나 낳겠다고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내가
결혼도 늦게하여 세 아이를 제왕 절개로 낳을 생각을 하다니...
내가 딸만 낳았다고 누가 나를 심하게 채근하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랬다한들 그 말에 기가 죽어
나를 혹사할 인간은 더욱 아닌데 말이다.
준비없는 세째가 들어서자 태어나야 할 아이여서 그랬는지
성당 영세를 받기위해 교리 공부 과정중이라 아이를 지울수가 없었다.
셋째를 낳고나니...난 그야말로 폭 고꾸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서른 후반부터 오기 시작하는 갱년기 노화 현상에다가
위로 올망졸망한 아이 둘이 6살 4살이어서 한창 손이 가는데다가
세째를 수술로 또 낳았으니...
내게 남아있는 기력이라곤 거의 제로 상태였다.
밥 숟가락 들어 올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운이 달렸다.
아이들을 돌본다기보다 아이들을 방치에 가깝게...
하루 하루 보내고 있었다.
내 나이 40 되던 해,
막내가 겨우 두돌을 지났을 때 난 또 한번의 수술을 하게 되었다.
내 안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그 전해 남편 중간 퇴직금을
주식에 넣었다가 다 날려버리고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아
내 생활 또한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스트레스와 무기력이
겹쳐서 또 한번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네번째 수술대 위에서는 두렵고 무서웠다.
3살,7살,9살 아이를 두고서 수술대 위에 실려가는
내 마음은 아득하였다.이 세상에 가장 가련한 아이들이
엄마없는 아이들이란 생각을 했었다.
혹시나...내가 수술후에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공포와 두려움을 떨치려고 <묵주 기도>를 반복해서 외웠다.
불경스런 생각이 덥치기 않게하기 위해 아주 빠르게,
간절하게,외고 또 외우면서 아득히 마취제가 내 온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그렇게 죽음같은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다시 눈을 뜨니 세상 영문을 모르는 내 아이들이
옆에서 아우성을 쳐대는 것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이리 무모한가.나는 왜 나를 늘 혹사하면서 살아왔나.
무엇을 향해서 깊은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달리기만 했나.
누구나에게 삶은 무거운 짐일수 있겠지만
감성이 여리고 신경줄이 섬세한 사람들은 삶이
더욱 예리한 빙판위를 걷듯이, 늘 긴장하며 살게 되는 것 같다.
친정집이 가세가 기울어...홀로 서기를 결심하고 걸어온 날부터
나는 소심한 성격에 늘,스스로를 들 볶으면서 살아온 것 같다.
나를 낮추고 낮추어도 내 안에서는 황량한 바람이 늘 일렁였다.
<토지>의 주인공 서희처럼 나도 내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친정집의 가세를 일으켜보고 싶었다.
그런 무모한 꿈이 나를 늘 내달리게 했으나,
결코 나는 돈을 사랑하지도 못했고 그것을 움켜지기위해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지도 못하는 유약한 심성이면서도
물질이 주는 풍요함을 늘 동경하여 그길로 내 달렸었다.
환상적인, 예술적인 요리가 내 숨겨진 창의성을 자극하여
요리사의 길로 접어 들기도 했지만 실은 내 안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서 궁해진 우리집의 기둥 하나라도
일으켜 세우고 싶은 심리가 팽배했었다.
그래서 돈의 이치도 모르면서 돈을 향해 달려 갔다.
하지만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닌지...
늘 제자리 걸음으로 종종대기만 했다.
운이 나쁘다는 말도 부정할수 없는 것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 다리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삶이 나를 준엄하게 꾸짖는 듯했다.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더욱 불행해 진다."라고.
하지만...난...자존심을 지켜줄 수 없는 가난이 싫어서 몸부림 쳤다.
나도 모르게 그래서 늘 달린것 같다.쉼없이...
미처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달려 가기만 했던 것 같다.
어느날...그런 내가...한없이 아팠다.
아득히 땅 속으로 잦아 들어 갔다.
내가 원하는 삶이 이게 아닌데...한참이나 다른 방향으로
내달려 와서 낯설은 곳에 내가 서 있었다.
가시밭길을 맨발로 뛰어서 발 바닥이 옹이가 박혀서
웬만한 가시쯤은 겁나지도 않을 줄 알았건만...
내 예민한 말초 신경이 궐기하듯 들고 일어났다.
"이제 너가 좋아하는 삶을 살아가라.
너가 물질을 가득 채워 놓고
부유한 상태에서 즐겨 보리라던 그 꿈은 어쩌면 영원히
평행선일지 모른다.혹은 너가 그렇게 된다한들...
안일에 젖어 맑은 소리들은 질식할지도 모른다.
적당하게 부족한 상태에서 갈망하게 되고, 노력하게 되고,
채우려고 깨어있게 되지만 포만한 상태에서는
그런 노력이 필요치 않아,어쩌면 너가 경멸하는 인간이 되어
깨어 있기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부족한 상태에서...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라.
행복은 너의 안에서 온단다."
숱한 상처로 얼룩져 지쳐 쓰러진 들 짐승마냥
웅크리고 있는 내 안에서 생명의 소리가 울려 왔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지 말라.
미래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일뿐.
내 앞에 주어진 시간만이 내 시간이다."
네번째 수술대에서 내려 온후...
난 살기위해 안간힘을 썼다.기력을 보충하고,
나를 세상에 드러내 놓고 세상과 함께 뒹굴고자
기꺼이 내 있는 그대로를 내 보였다.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이 무엇인가?
내 아이들의 운명을 좌우할수 있는 엄마로서
아이들과의 시간을 더없이 행복하게,
소중하게 꾸려 가야지 않겠는가?
행복은 행복을 추구하고 가꾸는 사람에게
화분의 꽃처럼 피는 것이다.
.......................................
그렇게...나는...나의 허상을 벗고
내 진정한 모습으로 거듭나서,진솔한 행복을 가꾸겠다고
시선을 안으로 향하여 뜨고,
노력하리라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나와 그대, 우리 모두 행복한 인생을 누리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