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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에게 융단 폭격을 받은 우리집.

농부김영란 2004. 1. 23. 17:55



구정 명절이라 시댁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온 우리 집.
실내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 있습니다,  영하~~~~ 3도.
혹시나 사람없는 집에 전기 누전이라도 될까봐
차단기를 내리고 갔는데 실내가 영하로까지

내려갈까하고  그냥 갔었지요.
보일러를 75도로 해 놓고 전기 히터를 강으로하고도
한 시간에 1도씩밖에 올라가지 않는군요.




30년 된 구옥.....남들은 불편하다고 관심도 갖지 않던 집을
나는 마당이 있고 길가에 대문이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무리수를 두어가며 구입을 했었는데
도심속의 전원 생활 흉내를 내며 작년, 올해 녹음 가득한

여름을 보내며 좋아라,이제야 숨쉴만 하구나하며

나의 그동안의 전원 생활에의 향수를 달랬는데
이사 오면서 경비를 줄이려고 내부 단열을 신경쓰지 못해서인지
작년 겨울 나면서 그동안 따뜻한 실내 난방에 길들여져서

추워서 혼비 백산 했지요.
올해는 나름대로 11월부터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하고
그리고 올 겨울 그동안 그리 춥지 않아서 이 정도면 버틸만하다며
흥부네 가족처럼 한 방에 몰아넣고 (난방비 절약을 위해)
오글 오글, 뽀글 뽀글,와글 와글...살 비비대며 두달만 참으리~
아이들을 어르고 설래며 겨울 나기를 하고 있었지요.
"우리 어릴때는 한지한겹 바른 문과 외벽에서도

아프지도 않고 잘 살아내었는데 뭘~"
보통 옷은 서너겹씩 껴입고...양말 신고...완전 무장하고 살아가니
그동안 편리함과 너무나 따뜻한 실내 온도에 길들여진

우리 가족들이 차츰 추위에 내성이 생기는지

이웃집이라도 놀러가면 모두 얼굴이 더워서 홍조를 띄더군요.

우리집 보통 실내 온도가 12도~15도.
적정 실내 온도가 18도라는데 그 정도만 되면

봄처럼 느껴지더군요. 방 바닥을 자글 자글 끓게해야만

겨우 방 온도를 맞출수가 있으니(윗풍때문에)
방은 따뜻한데 등은 시려서 늘 담요를 덮어 쓰고

컴에 앉아야만 하는데도 여름날 마당에 자리 깔고 누워서

아이들에게 별을 찾아줄수 있는 행복을 누리려면
이런 불편함 정도는 감수 해야지하며 (즐거이~?) 참아 내었는데...




오늘, 구정 명절 지내고 큰 집에서 돌아오니.....

줄 초상이 나 있네요.
동장군에게 융단 폭격을 맞았습니다.
외벽을 타고 올라온 부엌 수도와 화장실 수도는 꽁꽁 얼어 붙었고
(다행이 내벽쪽의 화장실 수도 하나가 얼지 않았더군요.)
하루전까지 방 바닥이 잘잘 끓던 안방이 영하 2도였고

보일러를 잠그어 두었던 거실에 둔 화분들이 축 늘어 졌습니다.

돌 확속의 금붕어는 얼음집속에서 다행이 살아있고,

내가 십년전에 500원 주고 사서 그동안 새끼를 많이도 번성시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던 난초는 얼어서 검푸르게 늘어져 있고
이웃집이 이사가며 주고간 봄 되면 꽃대를 몇개나 올리며

한달 이상을 화사하게 꽃 피우던 군자란도

거무 죽죽하게 얼었습니다.
지난 가을 화분에 두개씩 심어져 있는 대국이 1000원씩 하길래
몇개 사서 가을을 장식했던 , 보라색 노란색 하얀색 대국들이

겨울인데도 새 싹이 올라 오길래 마디 마디 잘라서

심어 놓았더니 뿌리를 내렸는지 쑥쑥 크고 있었는데....

모조리...얼어서 동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함지박 속을 가득 채웠던 스킨 다베스도 축 늘어졌습니다.

그동안 나의 손길을 받으며, 언제나 그 사랑에 보답을 해 주어서
메말라 가는 정서를 촉촉하게 유지해 주던 나의 사랑

식물들이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 갔다니...
일단 내 친구들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놓고
주인의 무심함을 탓하며 동사해 갔을 식물 친구들에게
위령제라도 지내 주어야겠습니다.
돈으로치면 별 가치도 안되었지만 생명이 귀하다하여

이삿짐 쌀때도  화분때문에 작은 용달 하나 더 부르는

비 경제적인 투자를 아낌없이 하였던 나의 오랜 친구들이었습니다.
겨울이면 방 하나만 보일러를 트는 짠순 아지매를 자처하는 제가
유일하게 사치를 좀 부린다면 식물 가꾸기와

꽃을 사는 것이었지요.
추위에 강한 관음죽과 너무 커서 허리가 꼬부라지는

아라우 카리아만은 살아남아, 애처러운 장면을 바라보고 있네요.

먼저 아이들을 전기 담요깔아 이불 겹겹이 싸서

얼굴만 내밀어 놓으니 남편 왈

"이런 집에서 살아야 하나"자조 섞인 한숨을 내 쉽니다.
"기백만원 더 들여 내부 단열을 다시 꼼꼼이만 했더라면
이렇게까지야 하겠냐마는 다~~아껴 보자고 이리 된 것 아니갔어~"
버럭 소리 지르는 나...째려 보는 나..."이게 다 당신 때문이여~~"
애 꿎은 남편 본전도 못 찾습니다.
사오정에 딱 걸린 남편이니 앞으로 다가올 실직에 대비해

내 마음이 늘 편치 않았기에 요즘은 심리적으로

더욱 초 긴축하며 살았지요.
산이 둘러싼 아담한 학교를 발견하여 아이들에게
자연을 가까이 접하게 해주고파서
그리로 이사 가자고 그리 노래를 했어도

집테크를 하기를 더 원했던 남편 소망따라 산 집이기에

그동안 나도 마당있는 집에서 불편하긴 하지만

운치를 느끼며 지내었건만
이 모든 불상사를 초래하게 한 장본인은 당신 때문이야~
내 간이 콩알만하게 오그라 들어서

허구헌날 개미 허리 표방하며 살게 만든 당신!
지지리 궁상과 옹색과,초인적인 내핍을 결행하며
온갖 머리 써가며 알뜰 가계를 꾸려오게 만든 것도 당신때문이여.




평범한 월급쟁이 아내인 내가 갑자기 초라해 보이고
그동안 사실 내 의지로 그리 달려 온게 분명 한데도

갑자기 이 모든게 능력 탁월하지 못한 당신 탓이야~로

화살 방향이 선회하니
"에궁~~~이렇게들 되는구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서로에게 화살을 돌리며 서로를 할퀴다가

끝내 부부가 원수가 되고, 가족이 흩어지고
귀한 목숨 스스로 끊는 현상까지 생기는구나."
그동안 행복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건만 갑자기 와르르르~~
힘들었던 것만 떠오르며 본의 아니게(속마음은 그게 아닌데)
상대에게 그 모든 책임을 떠 넘기려는 비겁함이

비수가 되어 찔러대면서 서로에게 치명적인

자존심의 손상을 주는 것이겠지요.
내 주변에 아이엠에프를 맞아 부부가 이혼하게 되어
아빠가 아이를 키우는 집이 몇 사람 있답니다.




참으로 안타깝게 보이는 풍경이지요.
천재지변으로 배우자를 잃는 상황이야 부득이 어쩔수 없겠지만
어른들의 성격차로, 가정의 일시적인 궁핍을 견디지 못하고
(아무리 어렵다해도 우리들 부모님 시절 보다야

훨씬 나은 세월이건만)
가정이 해체되어 아이들이 방치되는 아픔은 만들지 말아야 겠습니다.
저도 좋은 시절 여행 다니고 그럴때는 이 정도만 살면 되지하고

행복해했는데 아이엠에프를 거치면서 장기간 내핍이 계속되니

내가 이리 살아야하나하는 회의가 가끔씩 밀려 오기도 하더군요.
남들은 해외로 연수다,방학 영어 캠프다,학원이다, 과외다....
아이들에게 집중 투자하면서도 철철이 해외 여행에다가 스키장이다...
신나게 산다는데 난 어찌하면 더욱 알뜰하게 꾸려가 볼까하고
이 궁리 저궁리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
그 와중에 내 아이도 뒤쳐지지 않게 길러내랴, 영양 공급 원할하게 하랴,
나를위한 투자는커녕 형체도 흐물 흐물한 내 모습이 안타까와
때로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오다가도

"내가 왜 이랴~ 나답지 않게쓰리~"

그렇게 떨치고 일어 나기를 습관처럼 하다보니
"남들 사는것 뭐 다른게 있겠나~~ 평범한 소시민으로

행복을 만들어 가면서, 작은 일에 감사하며 살아야제~"
그렇게 결국 제 자리로 돌아 오곤 합니다.




큰 집에서 등 따시고 배 부르게 명절 잘 보내고 돌아와
오늘 아침, 어제 저녁 그동안 추방했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오돌거리며 마치~수재민의 설움을 조금이라도 떠 올리며
"그래도 내 집에서 겪는 불편인데 이 정도야 뭐~"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금니 딱딱 마주치며 뒷 정리를 하고 있답니다.
나이 먹어 후줄근해져 가는 내 모습이 서글프다가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고보니 이제사 분에 넘치는 소망을 가지면
십리는커녕 돌아서는 순간에 뒷통수가 깨진다는 것을 체험한지라
인생 살이 새옹지마...오직 건강함만 허락하셔도

감사할 줄 알아야한다고 깨닫게 된것은

나이 먹어 철든 모습이 아닐런지 위로해 봅니다.




연초부터,붕붕 뜨려는 내 욕심을 가라 앉히려는 섭리로

받아 들이려 제 마음 다지고 있답니다.

집 없고, 추운 곳에서 끼니 걱정 하는 이웃들을 한번쯤 돌아보게 한, 우리집의 오늘 이야기를 올려 봅니다.


늘 비우고, 분수에 넘치지 않게 소망 하여라.


스스로 다짐하며 하루를 보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