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농부가 되기 전
난 어떤 세계에 살았었나~
농부세상 10년을 넘겼을 뿐인데
그 이전의 삶은 마치 전생 쯤이나 아득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삶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인데
왜 전의 삶이 아득하게 멀리 느껴지고
지금의 삶이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것은 내가 전에 살던 세계에서 오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간극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여지는 것에 신경 쓰던 삶을 살던 이전의 삶과
흙과 뒹굴면서 내가 자연인으로 변해 가면서 느낀
삶의 가치관이 많이 달라지면서
삶에 대한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을 마주하며 자연의 이치를 하나하나 내 안에 들이면서
이전의 나를 내려놓고 떠나 보내면서
내 안에 자리하기 시작한 자유와 평안이 소중해졌다.
전에 추구하며 살았던 가치관이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지는 이유.
세상의 잣대를 벗어나고
세상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나한테 맞는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찾아가게 된 것은
자연이 내게 가르켜 준 선물이었다.
(나도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던 것을 향해 맹렬히 달렸었다)
머리로 계산하고 잣대를 굴리지 않고
태양을 두려워 하지 않고 흙투성이가 되어
땀 흘리며 사는 삶에 익숙해지게 되니까
진정한 자유가 찾아 오는 것 같다.
일 할 수 있는 건강만 있다면
사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내게 맞는 방법으로 자족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니
남은 삶이 불안하지 않게 되었다.
남의 부귀영화를 부러워 하지도 않게 되었고
보여지는 삶에 초연해지게 되니
내게 찾아 온 자유.
진정한 삶의 답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남의 삶을 기웃거린다고 내 것이 되지 않고
내게 맞는 나만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도시에서 나를 찾아와서 내 삶을 부러워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나처럼 살고 싶다고 한다.
그들이 내 삶에서 보여지는 부분만 보고
내가 어떤 고뇌를 하고,
어떤 치열한 노력을 했으며,
평안을 찾기위해 자신에게 고독한 질문을 수없이 하며
나를 극복했는지는 가늠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꽃 가꾸며 사는 나를 부럽다 한다.
일개미로 붙박이 인생이 되어 나를 위안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꽃이었는데
그들은 내 겉모습만 보고 부러워 하는 것을 본다.
그럼 나처럼 살면 될 것 아닌가? 하고 내가 대답한다.
뼈마디가 다 흐물거릴만큼 노동을 하며 극복하고나니
삶이 경건해지더라~
태산준령을 짐을 지고 넘고나니
작은 산들은 가볍게 보이더라.
평생을 넘치게 일하면서 살아낸 내 부모님들의 삶이 안스러워 보였었는데
내가 이제 그렇게 일에 매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고나자
일 할 수 있는 축복이 가장 큰 축복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인내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비로서 주렁주렁 달고 있던 욕심들을 내려 놓고
가볍게 살 수 있는 마음 가짐이 찾아 왔다.
땀 흘려 일한 댓가가 주는 열매가 달고 소중 해졌다.
열심히 일 해, 헛 꿈 꾸지 말고~
삶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삶이 깨닫게 해줄거야.
그리고나면 작고 소중한 행복을 알게 될거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내게 물으면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