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백련(장마방학)

농부김영란 2011. 6. 25. 07:04

 

 

 

 

 

 

 4월 중순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고나서부터 내 마음은 계속 추를 달고 가라앉았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가사처럼 생의 기로에 있는 엄마생각에

겉보기엔 일상을 유지하고 있어도 순간순간 왈칵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엄마에겐 나는 네째딸이다.

 딸로서는 막내딸이고 여러 형제가 있지만 내 몫을 하고있지 못하는 자책감에

가슴이 옭죄이고 짓눌렀다.정신이 명료하지 않은 상황에서

태연한 듯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명치끝이 내내 쓰렸다.

손님처럼 엄마 병실을 다녀온 후...내내...웃고 있어도 눈물이 났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유지하고 있는 내 일상이 무엇이란 말인가.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요~> 속으로만 되뇌며...여기까지 오는데

마음이 무거우니 몸도 따라 가라앉아 어느순간...내 몸도 한없이 가라앉아 숨쉬기도 어려운 순간이 있었다.

엄마의 분신인 내가 엄마의 아픔이 전해 오는 것일까?

지금 엄마가 사경에서 나를 부르고 계신 것은 아닐까?

내 몸에서 엄마의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어느 순간...내 안에서 타협하려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인생은 엄마 인생, 내 인생은 내 인생...

이기적인 자식의 소리였다.

엄마의 아픔 내가 대신 할수없고 나도 자식이 있는 부모이니

 내 일상을 소중히 여겨 엄마곁에 있지 못함을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마음이 고꾸라졌다가 일어섰다가 하며 예까지 왔다.

이 여름을 잘 이겨내 주실까...그 어려운 수술은 이겨내셨지만

스스로 식사하시기를 거부하신다니...이승의 삶을 정리하시고픈 마음이 분명하시다.

 

 

 

 

 

 

큰 딸 예슬이가 첫 방학을 맞아 집에 왔다.

집 떠나서, 엄마 떠나서  처음으로 오랫동안 혼자 나가 산 시간이었다.

예슬이는 나의 분신이다, 내 몸과 정신을 그대로 물려준 내 아이이다.

어설픈 초보엄마가 좌충우돌 시행착오하며 키운 첫 아이이다.

그래서 어눌하고 부족한 부분도 많아서 물가에 어린애 내 놓듯이 걱정이 되었었는데

내 곁을 떠날 나이가 되었으니 엄마인 내가 잡은 손을 놓아야만 했다.

이젠, 그 어떤 상황도 너가 판단하고, 너가 결정하고, 너가 헤쳐 나가야만 한단다.

한시도 눈을 뗄수가 없었었는데 아이가 떠나고 난 후, 마음을 달리하니

의외로 담담하게 마음을 정리할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이 나서 밥은 잘 먹는지,학교생활을 잘 적응 하는지

궁금도 하고 걱정도 되어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했는데 어느순간 나만 해바라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식은 부모곁을 떠나서도 잘 생활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놓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부모자식 관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엄마곁을 스무살에 떠나와서 내내 돌아가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내 딸이 명문대를 가거나 똑똑한 사람이 못되어도

엄마 곁에서 오손도손 살고 싶다는 것은 부모인 내 바램일 뿐이었다.

또한 그렇게 자식을 움켜쥐고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그래도 삶의 행복이 무엇인가, 내 혈육, 내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 볼 수 있는 행복이 부모에겐 가장 큰 위안이고 기쁨일 터.

 

 

 

 

 

내 자식들이 소중한 만큼

내 엄마도 우리들이 그렇게 목숨처럼 소중했을 터.

그 어려운 시절에도 엄마는 굶어도 우리들은 굶기지 않을려고

죽을 힘을 다해서 열심히 사셨을 터.

성공한 기억이 없는 아버지 옆에서 종부며느리로 살아내느라

초인적인 힘으로 살아내셨을 터.

 

그 엄마의 삶도 한편의 무성영화가 되었지.

 

 

 

 

 

그 강한 엄마가 아기가 되어 있었다.

 

언제나 남보다 일을 두배로 해내셔서 엄마 손등은 거북이 등처럼 투박했고

머리에 무거운 짐을 많이 이어서 늘 두통약을 먹던 그 강인했던 엄마가

요양원에를 가신 이후에 온갖 것을 다 수발받는 생활을 하고나자

세상에 그런 공주가 없다한다. 큰언니가 드나들면서 엄마를 돌봐주기에

나는 멀리있다는 핑계로 안부만 묻곤 하는데 약간의 치매끼가 있어도

누구보다도 밝고 건강하게 잘 생활하고있다는 소식과 눈으로 확인하였기에

나는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어나시다가 넘어져서

대퇴골반이 다 부서져서 대수술을 하고나서 엄마는 재활치료도 거부하고

식사도 스스로 하기를 거부하니  엄마 의지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라면

여기까지만 살겠다는 의지로 느껴진다.

 

여든 다섯살...내가 엄마라도...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엄마와 자식.

부모와 자식은 한 몸이다.

 

엄마가 아프니 나도 아프고

자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여러가지로 누적된 피로가

정신까지 흐려지게 만들어서

쉬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는데

장마핑계로 내질러 쉬고 있다.

 

 

 

 

 

 

내면의 이런 부대낌을 헤아리지 못한 남편이

자꾸만 채근질 하는 것이 불편하다.

 

나는 <일개미>가 아니야하며 반항하고 싶다.

 

 

 

 

 

 

엄마도, 아이도, 남편도 그리고 다른 일상도

잠시 벗어나서...나를 들여다 보아야한다.

 

피로가 끝없는 너울 파도처럼 밀려온다.

피로에 좌초되어 나를 잃을까 두려웠는데

장마 핑계가 더없이 반갑다.

그동안 너무 내달렸었나? 이제 숨 고르기를 할 때인 것 같다.

 

 

 

 

 

 

긴장이 풀릴때를 조심해야 한다.

잠복해 있던 수 많은 병들이 기세가 약해진 틈을 타서

내 몸을 잠식하려 든다.마음이 풀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우울증으로 치달으려고 한다.

 

갱년기 우울증...나도 몇년전서부터 함께 가고 있다.

순간 순간...노화현상을 자각하면서부터 마음의 노화까지 감지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던 친구들이

갱년기 증상을 토로한다.

나만의 병이 아니니 서로 위로하자.

나이에서 오는 병은 피할수가 없으니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연습을 해야만 하겠다.

 

어느 순간...내 자신도 잃어 버리는 치매라는 무서운 병도

파도가 밀려 오는 것을 바라 보듯이 맞게 될것 같다.

삶과 죽음도...그렇게 바라보면 모두 다... 축복일 수도 있겠다 싶다.

죽음은 천상으로 가는 길.

 

 

 

 

 

 

살아있는 동안은 꿀벌처럼 열심히 일하고...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고

그리고 천상으로 돌아 간다면...여한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생각 하면서

나는 엄마에 대한 죄스러움을 달래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그 길을 갈테니까...

 

 

 

 

 

엄마 사랑해요~

엄마 죄송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용서 하세요~

 

장마비가...하염없이 창가에서 부서져 내리고 있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의 비도 그치고

나는 또...내 일상을 번민하지 않고

일개미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며 충실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내 엄마와 내 아이들 사이에서

좀 더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게 될것 같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소홀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요즘 몇해전에 이사와서 풀지 못한 짐을 풀며 정리하고 있다.

몇해전에...이삿짐을...

그 정도로 내 일상이 정신이 없었는지 반문해 본다.

집안이 엉망이다. 피곤하다고 미루며 방치해 둔 결과이다.

예슬이 방학되어 오기전에 정리하겠다던 것이

아이가 집에 돌아와서 일주일이 지나도 아직도 정리중이다.

 

 

 

 

 

 

이제는 힘들면 무조건 손을 놓는다

무리하게 진행하면 큰 병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기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내 몸의 소리가 경고를 수없이 주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천천히 가라고...몸이 강력하게 말한다.

우리나이...조심하며 걸아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잠자리의 사랑

 

 

 

 

 

 

 

 

 

 

6월 24일 찍은 사진

 

이야기는 천천히 추가....